[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언젠가, 설교에서 목사님이 “말씀속에 떡이 있습니다. 그러나 떡속에는 말씀이 없습니다. 말씀을 중심해서 살아야 떡도 생기고, 힘도 생기고, 명예도 생깁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3대시험이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 말씀에 힘이 있었고, 명제가 분명해서 뇌리에 각인되었다. 말씀속에 떡이 있고, 떡속에 말씀이 없다는 이 분명한 사실. 집속에 방이 있고, 방속에 집이 없다는 이 단백한 명제앞에 우리는 자주 혼동한다. 방속에 집이 있을 수도 있죠?
도가사상의 도덕경에 도(道)를 도(道)라고 말하면, 더 이상 도(道)가 아니다는 성구가 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이 성구를 해석할 때 엄청난 비유와 상징으로 설명하는데, 사실은 간단하다. 언어의 속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내 이름은 ‘창훈’이다. 이름의 창훈과 본질의 창훈은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내 주변에서는 나의 본질을 ‘창훈’으로 인식한다. 불리는 이름과 본질이 서로 다른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설명할 때 언어로서 설명하는데, 언어로 표현되는 진리와 근본의 진리는 전혀 다른 것이다.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근본의 진리가 바로 ‘道’이며, 요한복음에 나오는 태초의 말씀이다. 말씀속에 떡이 있다라고 하는 그 말씀은 ‘태초의 말씀’이며,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 형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성경 자체가 태초의 말씀은 아니다. 태초의 말씀을 시대마다 중심인물과 선지자들이 각각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성경은 말씀의 나타남이며, 나타난 그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태초의 말씀과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이다. ‘말씀속에 떡이 있다’는 것은 내가 지금 말씀으로 살고 있는가? 그것을 묻는 것이다. 여호수아서 1장을 보면 말씀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자세를 알 수 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이다. 반면 우상숭배자들은 주야로 떡과 고기를 앞세워서 제사를 지낸다. 숭배의 신앙은 비슷한데, 간혹 우상숭배자들의 자세가 더 간절한데, 근본이 다르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구약과 신약의 성경을 멀리하면서 하나님을 교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뿌리없는 나무와 같고, 물없는 물고기와 같다. 성경은 날마다 묵상해야 영혼의 닻이 하나님께로 깊게 닿게 된다. 그래야 요동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