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직함은 누구나 가능하다. 사도(使徒)는 시킬 사(使), 무리 도(徒)로서 심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부름을 받은 사명자들이 곧 사도다. 심부름 내용은 ‘말씀과 설교’다.
12사도에서 가룟유다는 사도 직분이 있었으나, 제 갈 길을 가서 더 이상 사도가 아니다. 예수님이 임명했으나 사도권이 박탈되었다. 그 행위가 사도권의 명분임을 증명한다. 직분은 위로부터 내려오지만, 직분의 효력은 행함으로 발휘된다. 무늬만 사명을 가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명함은 그저 명함일 뿐이다.
지금 시대도 수많은 목사들이 있고,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고, 수많은 교사들이 있고,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있다.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가? 그 판별법은 행함으로 아는 것이지, ‘교리의 탁월함이나 교세의 확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행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거짓 선지자는 양의 탈을 쓰고 속에는 노략하는 이리가 있다. 그 행함이 결국 실체다. 사도 바울을 우리가 사도라고 인정하는 것은 그의 평생 행함 때문이다. 예수님의 그리스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평생을 바쳤다. 그의 인격과 행함에서 사도권이 세워진 것이다.
어떤 목사가 진실한가? 자기 백성의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 ‘구원주 예수님’의 사명이다. 예수님을 대신해서 성도를 보살피는 직분이 목사다. 목사는 직업이 절대 아니다. 성도들의 사연을 외면하는 목사는 예수님의 심정을 갖지 못한 것이다. 성도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 애환을 알고, 보듬는 목회자가 진실한 목사다.
어떤 정치인이 진실한 정치인인가?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인이다. 지역사회를 자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호소를 경청하고, 늪에 빠진 백성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정치인이 진실한 정치인이다. 그저 표를 받기 위해서 굽신거리는 정치인은 거짓 정치인이다. 그 행함으로 분별해야한다.
누가 진실한 교사인가? 그럴듯하게 말을 잘하는 교사가 진실한 교사일까? 절대 아니다. 진실한 교사는 학생들과 밤새 상담하면서, 학생의 진로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땀과 지식을 아끼지 않는 교사다. 학생편에서 학생에게 올바른 길을 안내해주는 교사가 진실한 교사다.
이런 모든 것은 사회적 역할론에서 그 역할에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누가 진실한 어머니인가? 누가 진실한 대통령인가? 누가 진실한 법관인가? 누가 진실한 언론인인가? 누가 진실한 사업가인가? 진실한 사업가는 사회공헌을 많이 한 사람이 아니다. 자기 직원들의 애환을 알고, 회사이익을 직원들과 함께 나누는 기업인이다.
양은 그 목자의 음성을 알 듯, 진실한 목자는 그 양을 안다. 목자는 목사를 의미하고, 양은 성도를 의미한다. 목사는 반드시 양의 삶을 알고서 기도해야한다. 성도의 이름을 알지 못하면서, 성도를 위해 기도한다고 할 수 없다. 진실한 목사는 이것으로 판별한다. 목사는 성경의 위대한 말씀을 전하는 것과 함께 성도들의 삶을 알고서 ‘백성의 죄에서 건짐을 받기위해서’ 함께 기도하면서 살아주는 사명이다.
3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교회를 거쳤다. 진실한 목사를 거의 만나지 못하였다. 단 1명이라도 만났다면, 교단을 옮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 애석한 일이고, 내게는 구원의 깊은 비밀을 알게 된 사건이기도 하다.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듯, 행함없는 말씀은 구원이 존재할 수 없다. 행함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불가다. 목사의 직분을 가지려면, 최소한 성도의 이름을 알고,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듣기위해 그들속으로 들어가야한다. 예수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