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려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갔다고 했다. 우리 인생은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가 많다. 아!! 그 기말시험의 공포!!
예수님은 40일을 굶었다. 40일 금식기도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40일째 직장에서 떨어졌다. 새벽조건기도를 드렸는데, 글쎄 직장에서 또 떨어졌다. 그때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을까? 먹고 사는 일이 40년 동안 가뭄에 들었는데, 이제 풀릴 때가 되었건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데, 마귀같은 놈이 와서 마귀의 방법을 제안하면서 ‘결탁’을 요청하면, 그 거절을 뿌리칠 단호함이 그대에게 있는가? 예수님은 있었다.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은 마귀의 제안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말씀으로 이기셨다.
마귀는 성전꼭대기에 예수님을 세우고서 뛰어내리라고했다. 사방이 절벽인 곳이 바로 성전 꼭대기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하더니, 마귀는 인생을 절벽 끝에 두고서 시험을 한다.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고서, 뛰어내리게 한다. 절벽에서 뛰어내려서 살아난다(?) 슈퍼맨의 영웅 테스트(?) 절벽에 처해본 사람들은 성전꼭대기에 놓인 처절함을 이해한다. 십자가에 메달린 심정은 절벽을 뜻한다. 죽고 싶은 그 고달픔, 자살을 하고싶을 정도로 괴롭고 고단한 그런 심경, 마귀는 바늘 끝에 인생을 올려놓고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교묘히 유혹한다. 벼랑 끝에 내몰린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말로서 유혹을 이겼다. 40일을 굶고서 먹는 것에 시험들지 않은 것, 그것도 벼랑 끝에 내몰렸지만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절벽에서 떨어지면 절대로 안된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죽음으로 내몰렸지만, 결코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귀는 ‘절하라’고 했다. 마귀는 무릎꿇는 사건으로 인생을 시험한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할 다른 것을 두게 하는 것이 마귀다. 마귀가 왕일 경우, 정말로 힘들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하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내게 절하라”고 했다. 절하지 않으면, 죽음에 던져질 수도 있다. 마치 다니엘이 황금우상에게 절하지 않아서 사자굴에 던져진 것과 같다. 직장에서 사장이 ‘절하라’고 명령할 때, 직장생활이 고달플 수도 있다. 교회에서 목사가 ‘절하라’고 강요할 때는 엄청나게 힘든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기라”고 마귀에게 말했다. 마귀가 “1번만 절하라”고 했던 것은 “하나님처럼 경배하라”는 말이다. 굴종의 신앙을 의미한다. 하나님 외에 그 누구를 섬기는 신앙은 이집트에서 돌탑을 쌓는 노예신앙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노예의 충성심을 가르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도록 자유의 신앙심을 교육하셨다.
조선이 1905년 외교권을 잃고, 한일합방을 통해 식민지치하에 들어가면서 1945년까지 40년동안 일제의 폭압에 놓였다. 그때 과연 일본의 권력과 결탁하지 않고서 ‘민족의 얼’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식민지 자체가 이미 성전꼭대기와 같은 절벽이었고, 권력의 횡포였다.
왕과 왕비가 우상숭배를 강요한 ‘아합과 이세벨’의 통치기간에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신앙심을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국가에서 인정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바알과 아세라였다. 이러한 일은 교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종교 지도자가 바알과 아세라의 정신으로 설교하고, 교육하고, 다스린다면,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엘리야같은 평신도들은 갈 곳을 잃고서 숨어서 살아야한다. 바알과 아세라의 정신은 바로 ‘인본주의’를 말한다. 돈을 탐내고, 성전건축의 외형에 집중하면서 스스로 말씀을 준행하기 보다는 말씀으로 성도를 지배하는 신앙, 그것이 바알과 아세라의 정신이다. 아합과 이세벨은 종교를 활용해서 백성을 지배한 정치인으로, 성경해석으로 성도를 다스리는 각종 종교가 여기에 해당된다. 성경말씀은 영혼의 양식으로 성도들을 지배하는 도구가 결코 아니다. 성도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원의 의식주인 것이다. 성경말씀으로 구원의 족쇄를 채우는 종교는 마귀다. 절대 속으면 안된다.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고달파도, 그때 마귀의 손을 잡으면 안된다. 검은 결탁은 뿌리쳐야한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절벽 끝에 내몰려도 절대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떨어지면 안된다. 성전꼭대기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절벽 끝에 내몰렸다면 바로 옆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면 된다. 보이는 것들이 마귀같은 놈들, 마귀같은 사건일지라도 하나님이 바로 옆에 계심을 망각하면 안된다. 마태복음 4장 첫구절, ‘성령에게 이끌려’는 성령이 손을 잡고 계심을 의미한다. 시험들 일이 생길지라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 성령이 옆에 있다.
“명령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해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자가 바로 마귀다. 3번째 시험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고 섬기게 하는 놈, 그것은 마귀다. 왕이 만약 그 짓을 하면, 그것도 마귀다. 절대로 속으면 안된다. 절대충성을 요구하면서 불법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라고 명령한다면, 그것이 마귀다. 마귀의 제안에 절대로 속으면 안된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면, 마귀는 결국 떠난다. 즉, 마귀의 주관권을 벗어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태복음 4장]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