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축복기도를 받고 도망자가 되었다. 반면, 에서는 축복기도를 받지 못했건만 이삭의 유산을 상속받았다. 빈털터리로 쫓겨났던 야곱과 가업을 물려받은 에서의 극명한 대립구도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사랑을 받은 요셉은 형제의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려가고, 사랑을 받지 못한 이복 형제들은 야곱의 업적을 차지해서 나눴으니, 이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딜레마다.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은 낯선 가나안에서 정착하지 못하는 유목민으로 살았으나, 그 평생이 고단한 방랑과 배회의 나그네 길이었으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방향있는 거주의 이동이었음을, 성경은 증언한다. 사람이 보기에는 버려짐이요, 추방당함이요, 밀려남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생명의 좁은 길일 수도 있다. 모든 열쇠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 무덤같은 곳도 하나님이 스위치를 켜면 빛이 들어온다. 아멘!!
나는 내가 있는 위치가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이길 오늘도 바란다. 그저 사람들이 지시하는 곳에서 내가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사람들속에 은밀히 말씀하시는 신의 언어를 들으려고 오늘도 귀기울인다. 나보다 나를 잘 아시는 나의 하나님, 인격의 성령님, 정관사 the처럼 내게 유일한 삼위일체의 그 하나님.
“몰몬경, 원리강론, 30개론 등등 성경해석집이 성경보다 권위가 위에 있게 되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라는 성경강연을 들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아멘”했다. 나는 분리된 객체로서 ‘나의 자아’가 세뇌당한 인식관으로서 북한의 탈북자와 흡사한 이중적 모순이 있음을 얼핏 보았다. 성경이 절대진리라고 고백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우상으로 믿는 다른 이론이 있었음을 본 것이다.
[로마서 1:25]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는 것이 우상숭배다.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는 것이 우상숭배다. 사람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것이 북한식 찬양이다. 이 땅은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인데, 이 땅의 것을 숭배하면 그림자와 실체를 바꾸는 혼동에 빠진다. 하나님의 진리를 중심하는 것, 어쩌면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방향이 인생의 참된 진로일 것이다. 내 여생의 진로가 하나님의 손에 끌려가길 진실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