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교육칼럼 / 장창훈]=지도자(指導者)는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곧, 네비게이션이다. 네비게이션이 잘못되면, 산을 넘고 강을 건너도 길을 헤맨다. 네비게이션이 틀릴 때가 많다. 그래서 지도자를 위해서 항상 기도해야한다. 말씀위에 지도자가 제대로 서있는지, 그것을 성도들은 유심히 살펴야한다. 차를 타면 운전대는 운전수가 잡지만, 옆좌석에 앉은 사람은 운전수가 제대로 운전하는지 살피듯 그러한 것이다. 생명을 맡겼는데, 그냥 졸면 안된다.
나는 30년 남짓 신앙생활을 했다. 순복음 교회까지 합산하면, 33년이다. 33년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파란만장했다. 나는 교역자들과 생각이 많이 달랐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인지, 나로서 이해하기 어렵지만, 교역자들의 태만함이 내게는 이해하기 곤란한 부분이었다. 물론, 잘했던 교역자도 있었고, 내가 비판하는 교역자가 100% 나쁜 인물일 수도 없다.
최근, 기독교 서적과 성경을 깊게 탐구하면서, 용과 짐승과 우상과 거짓 선지자가 추구하는 사상의 본질이 ‘권력’임을 배움으로 깨닫고서, 내가 왜 교역자들과 이질감을 가졌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교역자들은 대부분 ‘권위의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권력집단의 하수인에 불과했으니, 어쩌랴. 나는 그러한 교역자들을 위해서 눈물을 뿌려서 기도를 많이 했었다.
다니엘이 느브갓네살 황제앞에서 직언하듯, 나는 내가 속했던 단체의 총회장 목사를 위해서 신앙의 회복을 간구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고, 분별의 문제다. 그 분의 동생들이 3명이나 되는데, 왜 신앙의 중심을 분별하지 못하였을까? 참혹한 슬픔이 나를 엄습한다. 그래서는 안된다. 마약왕 (파블로)의 영화에서, 그 여자 뉴스 앵커가 파블로의 불법에 침묵하다가 동조하게 된 것은 자신에게 유익을 주기때문이었다. 유익을 준다고 해도, 불법은 불법이다. 권력집단이 된 것은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에서 벗어났다. 한참 벗어났다. 하나님은 세상권력의 종교집단을 허락하지 않았다. 새 예루살렘은 ‘사랑과 평화의 그리스도 왕국’이지, 용과 짐승과 우상의 왕국이 결코 아니다. 쉽게 말해서, 복종시키는 그런 권력집단의 종교가 아닌 것이다. 왜 모두 그런 권력에 굴종하면서 ‘섬김의 도’를 잃었는가? 사랑의 눈먼 봉사가 되었다. 예수님이 언제 “나를 섬기라”고 했는가? 예수님은 평생 하나님을 섬겼고, 또한 낮아져서 제자들을 섬겼고, 백성을 섬겼고, 백성을 사랑하므로, 백성을 그 죄에서 건져내려고 십자가를 짊어졌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 어떻게 행하셨는가? 부활하신 후에 주 예수는 제자들을 찾아가서 동일한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셨다. 베드로, 사도 바울, 야고보, 루터 등등 모두 그러했다.
진보와 보수는 정권탈환을 위해서는 불법도 정의로 둔갑시킨다. 종교집단도 만약 그러하면, 그 종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단이다. 사랑의 종교가 될 수 없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진리다. 7단계 법칙을 배우고 암송한 이유가 무엇인가?
광물계(광맥) – 물질계(물리) – 생물계(생리) – 지질계(지리) – 우주계(만유인력) – 인간계(심리) – 하나님과 인간 (진리)라고 배웠다.
“법을 어기면 죽는다. 예외는 없다. 하나님도 법안에서 하나님이다.”
요한복음 1:1에도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했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육신이 말씀이 되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삶속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따르는 자들은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목숨을 걸고서 순교의 정신으로 간언하고, 직언해야한다. 직언하다가 교주와 지도자의 칼날에 출교를 당한다면, 순교자의 피흘림으로 구원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다. 굴종의 신앙으로 빌붙어서, 지록위마(指鹿爲馬)처럼 내시신앙을 한다면, 그러한 자에게 심판의 재앙이 임할 것이다. 계시록의 예언이다.
내가 30년 속했던 종교단체의 문제점이다. 또한, 나는 그 단체가 새롭게 되길 오늘도 기도한다.
1. 한에녹의 영원한 복음에서 한때두때반때를 100% 표절한 사건
2. 여자들로 구성된 본부를 만들어서 권력집단을 만든 사건
3. 원리강론을 표절한 사건
4. 주 예수를 구원주로 고백하지 않는 사건
5. 독신-가정국-장년부의 계급주의를 만든 사건
6. 나단 선지자처럼, 미가 선지자처럼 직언하는 자들을 배제한 사건
7. 섭리를 떠난 자들을 저주하는 주술 신앙 사건
8. 하나님이 싫어하는 짐승의 권력이 군림하는 사건
9.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고, 죽이라고 지시한 사건
10. 모든 형제들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건
11. 한 개인을 성령 상징체로 만들어서 우상숭배하게 한 사건
12. 절대믿음과 공포심을 조장해서 건전한 신앙심을 침탈한 사건
13. 모사라는 이름으로 거짓말을 정당화한 사건
14. 찬양곡의 자율성을 폐지하고, 획일화한 사건
15. 성도들의 개성을 말살하고 양심의 자유를 뺏는 문제
16. 성직자가 현저히 부족하면서, 신학생을 무리하게 모집한 문제
17. 선교가 안되면서, 선교가 잘된다고 과대 포장하는 문제
18. 교단의 중직자들이 과잉 충성파로 구성된 문제
19. 이슬람 IS처럼 절대 충성으로 살인까지 용납하는 문제
20. 성도의 생명보다 성전을 우선시한 문제
21. 성직자들의 자율적 설교권을 허락하지 않은 독재주의
22. 의와 죄, 선과 악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문제
23. 인본적 계시국을 세워서 하나님의 계시를 막은 사건
24. 상징과 실체를 뒤바꿔서 사람보다 돌을 숭상한 사건
25. 주 예수를 구원주로 믿지 않으면서, 믿는 것처럼 거짓말하는 것
이러한 모든 내용들을 놓고, 나는 면밀히 따지고 분석한다. 잘못된 정책을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것을 ‘인본주의’라고 매도하는 그것이 인본주의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운 영혼과 자유의지를 허락하셨고, 양심을 통해서 진리를 분별하도록 성령은 역사하신다. 공산주의자들은 집단적 최면에 걸려서 정부 정책에 대해 만장일치로 손을 든다. 그것이 공산주의자로서 존재를 입증하는 할례의식이라서 그렇다. 집단적 최면상태, 그것은 공산주의적 몽유병이다. 그렇게 된 것은 중직자들의 책임도 매우 크다. 목숨을 구걸하고,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양심을 외면하면서 친일파처럼 자리에 연연하는 그런 썩은 사상,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산다”고 했고, “마귀야 떠나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다. 루터만 해도, 교황을 향해 “구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다. 면죄부를 판 교황 그대의 죄는 누가 사했는가”라고 직언했다.
이런 직언을 하는 중직자가 1명이라도 있었다면, 본부에서 여성 지도자 1명이라도 있었다면, 월송에서 단 1명이라도 있었다면, 정씨 일가 형제중에서 단 1명이라도 있었다면, 주 예수가 섭리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주 예수가 왜 섭리를 떠났는지, 진실로 깨닫길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 예수님이 섭리를 떠난 것은 섭리를 떠나보니 저절로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