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나를 구원하러 오셨다”고 믿는다. 이것은 협소한 의미다. 근원은 전혀 다르다. 예수님은 지상천국 건설을 위해 오셨고, 그 프로젝트가 상당히 구체적이다. 12제자를 택한 것은 장관을 임명하고 권력을 위임한 실제 통치제도였다. 그 근원은 ‘마귀 박멸’에 있다. 그냥 임명한다고 죄사함의 능력이 가는 것이 아니다.
죄(罪)는 빚을 갚는 것인데, 유대인에게는 4천년간 밀린 부채가 있었다. 왕 사채업자가 바로 용이었다. 그 용 때문에 유대인은 살아보려면 마음이 뒤숭숭, 살아보려면 바알과 아세라, 살아보려면 바벨론….. 그렇게 뱅글뱅글 돌았던 것이다. 그 마귀를 박멸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통치하는 국가는 ‘천국’이며, 이상세계다. 천국시민이 되는 비결은 아주 간단하다. 십자가의 문을 통과하면 된다.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정욕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세상을 향한 끝없는 욕망을 없애라는 것이다. 이것은 도덕이 아니다. 십자가에 메달린 예수님을 구원주로 믿는 그 순간 4천년간 상속된 아담의 상속채무가 모두 탕감된다. 마귀는 복리에 복리를 붙여서 인간을 제도의 굴레에 가뒀다. 예수님이 그 모든 빚을 탕감하신 것이다.
옛뱀은 채권자로서 인생을 괴롭혔다면, 예수님은 그 채권자와 전쟁을 해서 이김으로 땅을 뺏었다. 모든 채권이 예수님께 넘겨진 것이다. 고마운 예수님은 우리에게 빚을 독촉하지 않고 모두 지워주셨다. 이것이 아름다운 복음의 희소식이다. 생명으로 생명의 빚을 갚아주신 분이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 이외의 빚탕감은 ‘가짜 채권의 사문서 위조’에 불과하다. 속지마라.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별난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직장도 피라미드요, 종교도 피라미드다. 피라미드는 늪과 같다. 구원도 없으면서 구원의 밧줄로 칭칭 동여매면서 율례를 지키게 한다. 영혼의 구원은 없고, ‘영원한 미라’만 존재하는 곳, 그곳이 피라미드다. 돈 피라미드, 명예 피라미드, 권력 피라미드, 종교 피라미드 모두 조심해야한다.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가 없다. 돈이 많으면 돈속에 묻힌다. 돈을 다스릴 수 없으면 돈을 멀리하는 것이 훨신 낫다. 돈이 구원보다 낫지 못하다. 명예와 권력도 동일하다. 영혼의 구원에 자신없다면 권력도 멀리하라.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거룩한 할례다.
예수님은 40일 굶고, 밥을 먹고 살아야하지 않느냐고 마귀가 시험할 때, “오직 말씀으로 살 것이다”라고 모범을 보이셨다. 돈이 없다고 해서 빚을 내면, 돈마귀에 묶이게 된다. 마귀는 필요한 것을 주면서 덫을 놓는다. 사람을 좋아하면 사람을 선물로 주면서 인맥의 덫을 놓는다. 점점점 말씀과 멀어지는 생활을 하게 되면, 어느새 피라미드에 갇힌 수레바퀴 인생이 되어있다. 아!! 어쩌랴!!
무릉도원에 갔다가 나왔더니, 한 세월이 흘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피라미드에 빠지면, 한 세월이 훌쩍 지나간다. 무서운 일이다. 나는 이단의 다단계에 빠져서 30년이 실종됐다. 1년이 1억이면, 30억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십자가의 복음에 기대어 주 예수의 은총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내가 교리를 조금만 더 세밀히 검토했더라면…. 결국 내 불찰이며, 내 미련이다. 이제는 속지 않을 것이다. 속지 않게 해달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진실로 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