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은 하나님의 뒷모습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얼굴이요, 이목구비다.” – 설교말씀 요약노트
뒷태가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언어적으로 앞얼굴과 뒷모습은 사랑과 분노로 비유된다. 뒷모습은 ‘분노의 싸늘함’이다. 율법을 받았던 모세는 하나님의 뒷모습을 봤다. 그 모습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를 판결했던 심판자의 모습이다. 그래서 율법은 정죄함이요, 심판이요, 분노요, 범죄자다. 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인류를 향해 화해의 손을 내미신 것이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의 얼굴이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 어떤 신앙모임에서 구약을 없애고 새로운 정경, 복음서를 중심으로 신약성경을 만들었다. 구약에서 묘사된 심판의 하나님을 모두 배제하고, 복음서에 나타난 자상하고 자애롭고 사랑스런 하나님의 모습만을 발췌해서 정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폐기됐다. 율법도 하나님이요, 복음도 하나님이다. 둘은 나눌 수가 없다. 율법에서 돌이키면, 복음이다. 복음에서 돌아서면 율법이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창녀를 돌로 치려고 민중이 몰렸다. 그 모습이 바로 ‘율법의 정죄’다. 하나님의 뒷모습이다. 그런데, 예수님앞에 오니,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이다. 하나님의 앞얼굴은 사랑과 용서와 자비와 은혜다.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지 않고, 완성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 말씀은 좋게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진리다. 뒷모습이 싫다고 그 모습을 없애면, 사람은 죽는다. 율법의 심판과 복음의 은혜는 모두 하나님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리고 숨었다. 그 모습은 창세기에 있는 아담과 하와의 벌거벗음과 동일하다.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공포에 떨었다.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아담과 하와였다. 예수님을 떠나면 누구든지 두려움에 놓인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얼굴이고, 예수님을 떠나면 하나님의 뒷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뒷모습은 곧 ‘범죄와 정죄’에 대한 심판이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이 거절하면 을은 꼼짝없다. 하나님은 영원한 갑이다. 우주의 창조주이고, 지구행성의 건물주이다. 태양의 원자력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고, 달의 전봇대도 하나님의 소유다. 구름의 수도꼭지, 바람의 에어콘, 만물의 식량도 하나님의 것이다. 소유가 없는 것 같아도 따지면 하나님의 것이다. 이 땅에서 개인이 소유하지 않는 모든 땅은 국가가 소유한 땅이듯, 지구는 하나님의 소유다. 하나님께서 등을 돌리면, 인간은 세입자로서 꼼짝없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에게 얼굴을 돌리지 않으시고, 알몸을 보이시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그 거룩함앞에 인생은 사랑할지라. 창세기에서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데,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했다.
십자가에 메달린 예수는 율법앞에서 알몸이 되었다. 죽기까지 이 땅을 사랑하신 주님이다. 그러한 주님을 부끄러워하면 율법에 속한 것이고, 그러한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께 속한 것이다. 십자가를 버리면, 율법에 속한다. 이것이 인류에게 주어진 사랑과 율법의 계명이며, 구약과 신약이 나뉘지 않고 함께 묶인 이유다. 인생은 둘 중 하나다. 신약에 속하거나, 구약에 속하거나……
[창세기 2: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출애굽기 33: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출애굽기 34:33]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중략)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