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문을 배운 이유는 단어 때문이다. 소리글자로 추락한 한글의 어휘로는 표현의 깊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신앙과 신학에 대해 성도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신’을 같은 뜻으로 이해한다. 발음은 같지만, 뜻이 완전히 다르다. 신학(神學)은 하나님 신(神)이다. 내가 30년 있던 곳에서 어떤 목사는 새벽기도에서 “신학에서 神은 귀신 신이다”라고 풀었다. 한자를 깊게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GOD와 god의 차이다. 神은 귀신 신(神)이지만, 모든 귀신들을 통치하고, 인생을 창조한 근본의 신은 곧 하나님이다. 그래서 神은 하나님의 대명사다. 신학(神學)은 귀신의 학문이 아니고, 하나님을 배우는 학문이다. 신앙(信仰)은 하나님 신(神)을 쓰지 않는다. 믿을 신(信)을 쓴다. 이신칭의(以信稱義)를 의미한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의로움을 덧입어서 경배함을 갖는 것이 곧 신앙(信仰)이다. 신학(神學)은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며, 신앙(信仰)은 예수님을 배움으로 죄를 벗고 의의 옷을 입는 것이다. 한자는 글자 하나마다 뜻이 깊다.
성경은 사건과 문장과 단어가 한자처럼 상당히 깊다. 오늘은 마태복음 4장을 들여다보면서, 3장의 끝부분을 겹쳐서 읽었다. 마태복음 3장은 세례요한의 요단강 세례가 나온다. 백성들에게 세례를 주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맹렬하게 비판하다가, 나중에는 헤롯왕의 불륜사실까지 직격탄을 날린 불같은 성격의 세례요한이다. 그런 세례요한이 예수님앞에는 어린양같았다.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증거했는데, 세례요한도 예수님께는 순종적이고, 낮아졌다. 그리고,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낮아져서 세례받기를 요청하니,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요단강물에 서서 세례를 받으셨다면 예식이 3분 가량 걸렸을 것이다. ‘세례’는 곧 ‘침례’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물속에 잠수해서 세례를 받으시니, 30초 가량 걸렸을 것이다. 요단강물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물속에 들어가서 올라오기까지 3분 정도 걸렸을 것이다. 1분이 되지 않은 숨막힌 순간이 지나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다. 그리고 마태복음 28장 19절과 20절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나오셨다. 육신은 요단강을 나오셨지만, 그때부터 예수님의 사역은 ‘백성의 요단강’속으로 침수하셨다. 그곳에는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이 있었으니, 옥에 갇힌 세례요한도 있었고, 죄중에 빠진 백성도 있었고, 권력의 무덤에 갇힌 헤롯와 빌라도도 있었고, 사람의 피를 먹고 사는 무력항쟁 독립투사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도 있었고, 그물질하면서 살아가는 갈릴리 어부들도 있었고, 간음하다 잡힌 마리아도 있었고, 십자가도 있었다. 골고다는 ‘요단강물속 맹골수협’과 같은 곳이다. 마태복음 4장~28장까지 요단강물속 침수 상태를 자세히 풀어서 쓴 것이다. 3분이 곧 3년이었다.
내게 해병대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였다. 신앙을 뺏어갔으므로, 신앙이 역경에 처했으므로, 해병대는 내게 나쁜 기억만 남아있다. 그래도 나는 해병대 출신이다. 697기다. 내게 기독교복음선교회는 ‘성경의 지식’을 알려준 곳이지만, 예수님과 십자가를 강탈한 곳이라서 유쾌하지 못하다. 구원의 댓가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단체이다. 그래도 나는 그곳 출신이다. 모든 과거는 삶의 고향이다. 주님의 요단강물 침수속에는 ‘나’도 있었으니, 그래서 나는 주님의 은혜로 건짐을 받았다. 요단강물의 침수상황은 마태복음 4장에 바로 등장한다. 요단강물속에서 만난 영적 존재중 악한 상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마귀였다. 마태복음 4장의 마귀가 바로 백성의 요단강물 속에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유대광야에서 나오자 세례요한이 옥에 잡혔고, 이방의 갈릴리와 흑암에 앉은 백성과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 나온다. 빛이 되신 주님께서 사망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신 것이다.
어떤 종교단체는 ‘저주의 십자가’라고 말하면서, 권력을 얻고 부귀영화를 누렸어야할 주님이시다라고 말한다. 어불성설, 미련한 복음이다. 주님의 정체성을 너무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나도 몰랐을 때는 그러한 논증에 동의했지만, 지금은 거부한다.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가 시험을 했다. 마지막 시험은 ‘지극히 높은 산에 데려가서 천하만국과 영광’을 제안하면서 ‘절하라’고 했다. 세상권력을 주면서 노예로 삼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시면서, 마태복음 5장에서 당신의 나라를 ‘산에서’ 선포하신다. 주님의 나라는 마귀의 나라와 완전히 다르다.
[마태복음 4장]
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장]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4장]
12.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13.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