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목사님이 “예수님이 마귀한테 쳐들어간 것입니다. 주님은 공격적입니다. 마귀 소굴에 가서 전쟁을 해서 이기셨습니다.”라고 강해설교했다. 얼마나, 화끈하고 뜨겁던지, 잊혀지지 않는다. 누가복음의 족보와 광야시험을 연결해서 성경을 해석한 내용이었다.
오늘은 2월 4일, 마태복음 4장을 계속 읽었더니, 신비하게도 즐겁다. 머릿속에 광야에서 시험받는 예수님의 모습, 요한의 붙잡힘, 갈릴리 호수에서 그물질하는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오는 장면이 눈에 그려졌다.
사막에서 사십일을 굶고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 나는 지금껏 예수님이 마귀한테 시험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예수님이 마귀를 시험했음을 알게 됐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받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으로서 마귀의 시험을 모두 이겼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대답이 마귀에게 시험이 되어서 마귀는 답을 쓰지 못했다.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을 살 것이다”라고 했다. 바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하는데, 마귀는 그것을 못하고 있다.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보라고 마귀가 유혹하자, 주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을 시험한 마귀가 잘못됐다고 말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귀가 “절해라”고 하니, 주님은 “물러가라”로 답했다. 그리고 마귀가 물러갔다. 마귀를 없애는 것은 “물러가라”와 “하나님을 섬기라”에 있다. 마귀는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진실로 섬기면 마귀는 물러간다. 섬김을 받게 되면, 마귀가 찾아온다. 섬김을 받는 짐승의 권력은 우상숭배다. 그래서 주님은 ‘인자의 권력’으로 겸손을 알려주신 것이다.
마귀는 예수님께 질문을 해서 하나님의 아들됨을 시험보려고 했는데, 그러한 시험문제가 실상 마귀가 마귀인 것이 들통나는 시험문제였다. 마귀의 시험은 이후로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의 인신공격형 질문으로 대체되었고, 제자들의 권력암투와 베드로의 십자가 반대, 가룟유다의 배신으로 둔갑했다. 그 중에서 가룟유다의 배신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마귀가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태복음 4:11)
이 성경구절은 아무리 읽어도 지루함이 없다. 천사들의 수종을 받기 위해서는 마귀가 떠나야한다. 마귀가 떠나려면 “마귀야 물러가라”고 호통을 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높임을 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섬김으로 경배를 드려야한다. 또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한다. 그리고 삶이 아무리 궁핍해도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된다.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시험들 수도 있다. 마귀는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마귀가 되었다. 돈, 권력, 부귀영화가 없어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낙(樂)으로 삼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부귀영화로 삼는 자는 복이 있다. 마귀는 탐욕과 교만과 굴종을 제일 좋아한다. 탐욕과 교만과 굴종은 마귀의 밥이다. 겸손과 믿음과 사랑은 마귀가 가장 싫어한다. 성령충만은 ‘마귀박멸’이다. 주님께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시고 마귀와 싸워서 초전박살을 낸 것도 ‘성령에 이끌린 삶’을 사셔서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