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월 7일 마태복음 7장을 읽었다. 주님은 마귀를 물리치고, 지상천국 대통령에 취임하시며 마태복음 5장 6장 7장 취임연설을 하셨다. 지상천국의 청사진은 여기에 모두 들어있다. 지상천국의 시민권자, 지상천국에서 감옥에 갈자가 구분된다. 세상의 나라는 적당히 살면 국적을 취득하고, 죄인도 국적이 박탈되지 않는다. 반면, 주님의 나라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 ‘지상천국 국적’이 자동으로 사라진다. 은혜의 복음이지만, 자세히 알아야한다. 율법보다 엄격한 말씀의 효력이다. 율법이 그물이면, 복음은 깔대기와 같다. 그물에는 큰 것들이 걸린다. 깔대기는 각종 미세한 불순물이 걸러진다. 주님의 법은 아주 예리한 것까지 점검한다.
율법이 지하철이면, 복음은 비행기와 같다. 지하철은 검문검색이 없다. 비행기는 검문검색이 매우 강하다. 보안검색이 철저하듯, 주님의 말씀은 겉과 속과 과거와 마음까지 모두 감찰해서 검색한다. 율법과는 차원이 다르다. 속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수준이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한다. 율법은 무화과잎으로 가리면 가려진다. 복음은 발가벗겨지는 수준으로 살아야한다.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복음이다. 죄가 없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덧입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덧입고, 복음의 말씀을 행함으로 천국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마태복음 7장은 ‘7’이 꼭 부메랑을 닮았다. 七은 한자로 ‘페인트칠 일곱 번’을 뜻한다. (또는 손가락 2개를 편 모습으로 5+2=7이다.) 마태복음 7장은 비판의 부메랑을 말한다. 비판하면, 그 비판으로 자신이 비판을 받는다. 촛불혁명으로 세워진 정부는 미투운동의 비판을 받고서 핵심 지도부가 감옥에 갔다. 정부를 탄핵한 사법부는 검찰의 비판을 받고 대법원장이 감옥에 갔다. 로마를 정죄한 유대교는 로마에게 짓밟혔다. 예수님을 정죄한 유대교는 그 정죄로 구약에 갇혔다. 비판하면, 그 비판이 자신의 실체가 된다. 그 이유는 비판하는 자는 자신의 들보로 비판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했을 때, 돌을 든 민중에게 내면의 음흉한 죄가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교만이 보이면, 그것은 자신에게 교만의 인식이 있어서 그 교만으로 상대의 교만이 보이는 것이다. 누군가의 비리가 보이면, 그것은 자신에게 그러한 비리의 인식이 경험적으로 있어서, 그 비리로 상대의 비리가 보이는 것이다. 자신에게 내재된 은밀한 경험이 ‘자라보고 놀란 경험’으로 솥뚜껑을 ‘자라’로 비판한 것이다. 상대의 잘못이 보이면, 그 잘못을 ‘거울삼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길이다. 마태복음 7장은 이것을 말한다.
“보수는 썩었고, 진보는 퇴보했다”
– 설교말씀 요약노트
언젠가 교회에서 들었던 설교말씀인데, 교회가 진리안에 있어야하는데, 진보와 보수의 이념이 장의자를 차지한 기독교의 현실을 개탄한 내용이다. 예수님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언약의 말씀이 없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이념만 넘쳐났다. 마치 창세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없고, 말씀을 어긴 아담과 하와와 뱀만 있었듯이 그러했다. 통탄할 노릇이다.
그러하면, 나는 어떠한가? 이것을 물어야한다. 자신부터 점검이다. 상대를 비난하는 그 날카로운 비수를 자신에게 겨눌지라. 우리 조상의 여인들은 비녀를 비수(匕首)로 삼았다. 비수(匕首)는 말 그대로 머리에 꽂은 비녀다. 그 비녀는 자신을 죽임으로 정조를 지켰다. 모든 비판은 비녀처럼 자신을 향해야한다. 그래야 생명성전이 청결해져서 오늘도 주님을 모실 수 있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면,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 에서를 ‘하나님을 본 것 같다’고 고백하듯이, 세상모든 것이 하나님의 감사로 보여질 것이다.
마태복음 7장은 ▲비판의 부메랑 ▲구하라 찾아라 두드리라 ▲좁은 문 ▲양의 탈을 쓴 거짓 선지자 ▲열매와 나무 ▲반석위에 지은 집 등이 나온다. 그 중에서 ‘반석위에 지은 집’은 ‘주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를 뜻한다. ‘말씀을 듣고 행함’이 곧 ‘반석’이지, 그리스도 자체가 반석은 아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은 자는 ‘모래위에 집을 지은 자’라고 되어있다. 결국, ‘행함의 반석’이다. 유대교는 로마와 화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아서 AD70년에 결국 멸망당했다. 그와같이 각 개인도 예수님의 말씀을 행하면 반석위에 집을 지어서 창수와 홍수에도 무너지지 않지만, 행하지 않고서 세운 집은 모래위에 지어서 그냥 쓰러진다. 예수님을 대충 믿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교회가 십자가만 걸어놓는다고 그리스도의 반석에 세워진 교회라고 할 수 없다. ‘말씀을 행함으로’ 반석위에 세워지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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