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공동체를 통해 ‘진리와 성령’의 본질을 알게됐다. 성령의 역사는 진리로 제어할 때, 그 빛이 깊고 신비롭다. 진리의 제어를 받지 않는 성령의 역사는 위험하다. 제어하는 성령, 나는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
에스더서를 통해 ‘권력의 분권화’에 대해 배웠다. 권력이 나뉘지 않으면, 독재권력이 되면서 ‘우상’(偶像)의 출현을 예고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권력을 ‘삼권분립’(三權分立)으로 나누었는데, 다수당이 장악하면서 입법권과 행정권과 사법권이 하나로 뭉쳐질 경우, 국정농단의 사태가 발생한다. 하나로 뭉치는 것이 일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지만, 권력은 ‘우상숭배’로 이어질 위험도가 높아진다. 무서운 일이다.
중용(中庸)의 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과식은 소화불량에 걸린다. 글을 쓰다보면, 이것저것 담고싶은 내용이 많지만, 절제의 미덕으로 간결미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나의 아버지는 항상 “조금 덜” 먹으라고 했다. ‘배가 조금 덜 부를 정도로’ 밥을 먹도록 조언하였다.
누군가 자신을 비판할 때, 겸허히 수용하는가? 그러면, ‘제어하는 권력’을 가진 것이다. 누군가 자기를 칭찬할 때, 스스로 낮출 수 있는가? 그러면, ‘제어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제어는 절제요, 성령의 능력이다.
옛날 교회에서 “1시에 예배가 끝난다”라고 했으면서, “3시까지 예배를 드린 것”은 성도들의 배고픔과 고단함을 너무 모르는 ‘성령의 과도함’이었다. 성경의 배움을 통해서, 성령은 제어함으로 은혜를 주지, 과도함으로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감동의 매력은 ‘절제의 밀당’에서 생긴다.
시간의 제어!!
나부터 스스로 제어하는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