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8장은 형제끼리 용서와 화목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나와있다. 만 달란트는 이신칭의(以信稱義)를 말하고, 백 데나리온은 성화(聖化)를 뜻한다. 베드로가 “형제의 죄를 몇 번이나 용서할까요”라고 물은 것을 보면, 엄청난 욕과 멸시와 구박과 비난을 받았던 것 같다. 임금에게 만달란트 빚을 진 것으로 나왔으니, 3조원의 빚을 베드로가 졌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반대한 죄일 것이다.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는 로또를 맞추듯 예수님의 사명을 고백했다가, 십자가를 반대하면서 “사탄”으로 지목받았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변화산상의 빨래터에 데려가셨다. 과연, 그곳에서 모세와 엘리야만 빨래한 듯 변화했겠는가? 베드로의 마음과 영혼도 그렇게 되었으리라. 변화산상에 대한 마가의 기록은 “빨래한듯”으로 묘사했다.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은 마태복음 18장 21절 말씀에서 베드로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는 자주 의문을 품는다. 답은 아직 모르겠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를 ‘아간의 범죄’로 지목해서 잡아내면서, 그와 동시에 마태복음 18장 21절 말씀을 범하게 되니, 만달란트 채무가 다시 발생하면 어쩌나? 마태는 왜 ‘베드로의 질문’과 ‘만달란트 비유’를 함께 실었을까? 재산을 일괄 몰수한 베드로 공동체에 발생한 성도들의 불만을 조심스럽게 비판했던 것은 아닐까? 말씀에 근거한 물음표를 남긴다. 베드로는 왜 아나니아 삽비라는 용서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