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드라마 비평 / 장창훈]=드라마는 사람의 지성을 확장한다. 문자에 갇히거나, 관성의 법칙에 묶인 지성에 ‘새로운 타자(他者)’의 숨결을 넣는 것은 ‘예방주사’의 바이러스를 주입하듯, 스스로 해야할 책무다. 열혈사제 드라마는 종교인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관점을 제시하며, ‘영화 사바하’처럼 ‘청년 예수’처럼 ‘종교의 현실화’를 추구한다.
형사들은 자주 증거를 조작한다. 가장 나쁜 증거조작은 ‘진술조서’다. 그들은 시나리오를 이미 짜서, 거기에 맞춰서 질문을 한다. 신문조서는 범죄자를 잡는 것이 아니고, 범죄자를 만드는 과정에 해당한다. 물이 포도주가 된다면, 그들은 의인도 죄인으로 만드는 나쁜 세력이다. 어떤 형사가 ‘의로운 신부 가브리엘’을 ‘성추행한 신부’로 둔갑시키고, 본인은 공적을 챙겼다. 그리고, 미카엘 신부가 그 형사를 찾아가서, ‘지옥의 모습’을 설명하는데, 불가마보다 무섭게 납득시킨다.
“지금 당신의 모습 그대로 무한반복되는 세계”
여자 검사도 성당의 신도다. 고해성사를 통해서 죄를 받아주고 용서함으로 품어준 고결한 가브리엘 신부가 모함을 받아 죽자, 검사가 그 신부의 죄를 판단한다. 합리적 의심이 있지만, ‘조작된 사실’을 증거로 인정하는 감정없는 여검사앞에 미카엘 신부는 분노한다. “당신의 죄를 용서해준 신부가 죽었어요!!” 가브리엘 신부는 결국 부검(剖檢)없이, 무덤에 묻혔다. 관이 땅속에 묻히자, 무대위에 살인자는 상(賞)을 받는다. 죽음과 영광이, 관(棺)과 상(賞)이, 무덤과 무대가, 장례식과 시상식이 서로 대비되면서, ‘의인과 죄인’의 현실적 투영을 보여준다. 과연 누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인가? 가브리엘 신부는 영광을 뺏긴 아벨이고, 살인자는 영광을 가로챈 가인과 같다. 미카엘 신부는 가브리엘 신부와 인격적 교감을 나눴다. 열혈사제는 선한 사마리안 비유를 ‘가브리엘 신부와 미카엘 신부’의 관계로 설정해서 보여주고 있다. 국정원 비밀요원이었던 김해일(미카엘 신부)이 전쟁터에서 폭탄을 던져 아이들을 죽인 그 사건으로 고통을 받고, 민간인이 되어서 참혹한 지옥을 겪으면서 눈덮힌 골목에 쓰러졌다. 그때 가브리엘 신부가 김해일을 구해주면서, 인연이 이어진 것이다. 인생은 누구나 현실적 도움을 통해서 관계가 형성된다.
‘피와 살’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이와 같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