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 권력의 사유화
언젠가, 교회주보의 요약말씀이 내게 잔잔한 감동을 줬다.
“총리대신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을 설득하여 자기에게 밉보인 모르드개의 유대민족을 전멸시켜 버릴 인종청소를 준비합니다”
누구나 원수가 있다. 일본과 친일파와 종북파와 북한은 내게 너무 먼 그들이어서 ‘감정적 분노’는 없지만, 찢어진 상처를 준 몇몇의 가해자들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한때는 피해사실을 증거삼아, 나는 하나님께 고발하듯, 탄원하였다. 그때마다 주님은 “네 눈의 들보를 빼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의 도(道)를 통해, 나는 내 자신을 겸허히 돌아본다. 몽유병처럼, 나르시즘에 빠지지 않으려고도 애쓴다.
오늘은 조금 일찍 일어나, 감사의 제단을 쌓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너무 큰 복(福)을 받았다. 인생은 누구나 맨 먼저 어머니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엄마’라는 말을 배운다. 그리고 걸음마를 익힌다. 그리고 가족을, 친구를, 사회를 배워간다.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의 예언을 성취한 성약의 섭리인으로서, 나는 자부심을 가진 족속에 속했으나, 십자가를 모르는 무지한 자였으니, 이런 모순이 어디에 있을까? 십자가를 모르면서, ‘영광의 십자가’와 ‘심정의 십자가’를 날마다 고백했으니….
지난해 나는 생각지 않은 바람에 휩쓸려, 옛날 교회를 떠나, 새로운 곳에 옮겨서, 성경의 진리를 배우면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역사’를 알게 됐다. 기존에 알던 것이 전혀 다르게 인식되는 신선한 변화였다. 그리고, 나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탁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자기혁명’을 살아간다. 내가 바뀌어야, 상대가 바뀐다는 이 간단한 진리가 내게 적용되길, 오늘도 고백한다.
내가 다니는 교회가 참 좋다. 성경속 인물들이 실제로 살아있듯 설교말씀이 생동적이며, 교회 성도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독립적 인격체로 살아서 자기표현이 분명한 것이 정말로 좋다. 어디서 이런 교회를 만날 수 있겠는가. 고통으로 신음하는 모든 성도들이 인내롭게 견딤으로 그리스도의 인격체로 변화되기를 함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