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앞에서는 두려움으로 굴복하고, 인자앞에서는 마음으로 굴복한다. 십자가를 거부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예언”의 피할 길까지 주셨다. 율법을 거부하면서 살 길을 찾아나선 모르드개와 에스더처럼, 예언을 거부하면서 주님과 함께 할 자를 기다리시며…..
‘광해군 시대’를 다룬 역사 드라마 ‘왕이 된 남자’에서 왜 신치수(좌의정)는 저항하고, 도승지는 왕을 따랐을까? 얼핏 보면, 도승지가 하만처럼 절대권력의 우상처럼 보이지만, 하선은 끝까지 투쟁하고, 왕의 권력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백성을 위해 뭐라도 해주려고, 자신이 위태로울지라도 왕후를 지키려는 그 모습은 예수님을 많이 연상시킨다. 하선과 도승지가 둘이 있을 때는 도승지가 오히려 ‘위’에 있다. 마치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명령하듯이….. 모르드개가 키우고, 양육하고, 왕후로 만들었으니……
그런데, 에스더가 이제 모르드개를 위해서 금식을 선포한다. 왕후 자리를 버리고 왕을 만나겠다고 하므로…. 하선이 그렇게 했다. “내가 죽더라도, 왕의 심장을 내줄지라도, 그대를 버릴 수 없소”라고 하므로, 그제서야 도승지는 스스로 무릎을 꿇고 왕을 왕으로 모신다. 진정한 왕은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예수님 외에 그 누가 인류의 왕이 될 수 있을까?
[요한복음 10장]
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