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선일보를 좋아한다. 보수적이라서 그렇다. 진보의 불타는 지식이 나를 가슴 설레이게 하지만, 다시스로 가려던 요나가 돌이키듯, 나는 항상 ‘보수의 원점’을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없으면 상대도 없고, 나라가 없으면 국민도 없고, 하나님이 없으면 우주도 없으니, 보수(保守)는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다. 수구꼴통의 비판을 받겠으나, 지킬 것은 지켜야한다. 무엇을 지켜야하나?
조선일보 A8면 (2019.2.27) 방탄 소년단의 아버지, 방시혁씨 기사가 북미회담보다 내 눈길을 끈다. “나를 만든 건 분노”라는 그 제목이 자극적이면서, “분노의 철학”이 먼저 생각났고, “방시혁을 분노하게 만든 그 실체”가 몹시 궁금해졌다. 성경읽듯, 기사를 탐독했다. 몇 번씩 읽고, 또 읽었다. 재밌었다. 푹 빠지듯, 방탄 소년단 책도 사서 볼까? 생각이 들 정도로…..
성경적으로 내 생각의 수면으로 ‘모르드개’가 떠올랐다. 우상을 향해 저항했던 외로운 늑대정신, 모르드개. 의로운 불독정신 모르드개. 에스더가 만약 모르드개의 말을 듣지 않았으면, 모르드개의 저항정신은 “왕후 에스더는 유대인이다”라고 민원을 넣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처형당할 수도 있었을 것, 사건 내막을 보면 그렇다. 불의(不義)와 타협은 어떤 모양으로도 안된다.
‘방시혁씨를 만든 그 분노’는 ‘비타협 정신’으로, 무사안일 정신에 대한 분노요, 적당하게 끝내려는 관습과 관행에 대한 분노였다. 십자가를 지는 정신이 간혹 순종과 맹종과 절대충성으로 변질될 때가 있다.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곧 ‘저항하라’는 말과 같다. 십자가로서 거부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권력에 저항했다. 내가 저항할 우상은 무엇인가?
내안의 우상을 부셔야겠다. 그것이 무엇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