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사제 드라마는 질문의 화살을 예리하게 던진다.
1. 대한민국 법 vs 바티칸 법
2. 사람이 주는 기회 vs 하나님이 주는 기회
3. 굴종 vs 십자가
바티칸 법은 ‘천법’의 상징이다. 예수님이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뤄지길 원한다”고 하셨다. 지상의 도시와 하늘의 도시로 구분되는 2개의 법이 이 땅에 존재한다. 창세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법과 뱀의 법이 그것이다. 둘은 서로 충돌한다. 때론, 하나님의 법이 엄격하고 무섭고 비합리적일 때도 있다.
하나님은 “따먹지 말라”고 했고, 뱀은 “따먹어도 좋다”라고 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니, 조용히 덮고 지나가자는 부류(대한민국 법)가 있고, 재조사해서 진실을 규명하라면서 사건의 전쟁을 일으키는 부류가 있다. 평화가 절대선(善)은 아니다.
이하늬는 연기력이 매우 좋아졌으나, 이번 드라마에서 역할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말단 경찰이 열혈사제와 함께 종횡무진하고, 이하늬는 인형뽑기 앞에서 인형이나 뽑는 그런 무능하고, 추락하고, 아부하는 그런 여검사다. 조금만 보더라도, 가브리엘 신부의 사건은 의혹투성이고, 바티칸의 교황까지 반응을 일으켰으나, 이하늬는 눈앞의 진급이 더욱 간절하다. 이런 부류를 일컬어 ‘성공과 진급의 우상숭배자’라고 한다.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3대 시험을 치르는데, 마지막 시험에서 마귀가 “모든 것을 줄테니, 절을 하라”고 했다. 이때 예수님은 단호히 거절했다. “절”은 “노예”를 뜻한다. “모든 것”은 곧 “사람이 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하늬가 원하는 것은 출세와 진급이다. 그래서 검찰내부는 이하늬에게 “진급을 해줄테니, 시키는대로 사건을 조작하라”고 한다. 이하늬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진실을 은폐한다. 추락한 검사다. 타락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면서 시작된다.
이러한 부류를 일컬어 “사람이 주는 기회”라고 열혈검사 미카엘 신부는 꼬집는다. 사람이 주는 기회는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주는 기회는 지갑을 겨우 채우지만, 하나님이 주는 기회는 영혼을 채울 수 있다. 사람은 대부분 사람이 주는 기회를 잡으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외면한다. 그때, 이하늬가 인형을 잡았다. 그리고 말한다.
“신부님께는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으신가요? 신부님부터 하나님의 기회를 붙잡으시죠!!”
그러면서, 인형을 건넨다. 이 말은 충격적이다. 왜냐면, 미카엘 신부는 이하늬의 조언을 듣고서 바티칸에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의 응답으로 가브리엘 신부의 사건이 다시 조사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미카엘 신부는 하나님의 기회보다는 ‘자신의 손’을 먼저 의지한다. 인생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손길이 때로는 인형뽑기의 나약한 움킴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생의 마음을 성령으로 붙잡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놀라운 일이다.
황철범(황사장)은 조직의 두목이다. 세상적으로 단체 회장이다. 황사장은 궂은 일은 모두 하면서 윗사람들에게 잔소리를 듣고, 면전에서 치욕을 당한다. 마치 무신정권의 무신처럼, 강석태 부장검사가 “무릎 꿇어!!”라고 명령하니, 황사장은 억지로 무릎을 꿇는다. 속에서 마음은 비틀어진다. 분노의 우상이 생긴다. 이러한 강제적 지배는 마음속에 우상을 만들고, 표면적 우상이 위에 군림한다. 때가 되면, 지배당한 황사장이 복수의 칼을 꺼낼 것이다. 종교권력에서 억지로 믿게 하는 신앙도 이와 같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이심”을 강제로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서” 따르라고 했다. 군림하는 권력이 아니라, 섬김의 권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