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과 싸움은 적진 깊숙이 들어가야한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한다고 했다. 에스더서에서 우상은 하만이다. 모르드개는 우상을 잡으려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이 수산궁 앞에서 1인 시위를 했고,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을 찾아갔다. 둘이 모두 우상권력에 해당한다. 우상을 잡으려면, 우상이 있는 깊은 곳으로 쳐들어가야한다.
우상은 마음속 깊은 곳에 내재한다. 각자 마음속에 움튼 우상을 직시하라. 우상은 자신이 가장 염원하고, 사랑하는 그것으로 둔갑한 경우가 많다. 때론 직장의 신으로, 때론 자기 자신으로, 때론 절대 가치로서, 떼론 죄책감으로, 때론 양심으로, 때론 도덕적 잣대로서….. 자기 것이라서 자기가 우상을 섬기면서도 모른다. 이러한 우상을 ‘내면적 우상’이라고 한다.
우상을 없애려면, 우상이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우상은 마음 깊은 곳에 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나와 투쟁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나에게 익숙한 그것이, 나의 우상이 되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방해가 될까, 심히 걱정하면서, 익숙한 것들과 결별을 선언하듯 나와 싸운다. 우상은 다양하고, 적은 곳곳에 출몰하며, 수시로 쳐들어온다. 우상의 적은 마음속 깊은 곳에 아름답게 모셔져 있다.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라. 불상처럼 견고한 그것이 곧 우상이다. 여러개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없어져야, 마음에 진정한 평화가 온다.
이 세상도, 단체도, 종교도 동일하다. 절대자가 존재하면, 그것이 우상이다. 성경적 관점에서 그러하다. 절대적 존재가 어딘가 있다면, 그가 적그리스도다.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무서운 비밀이다.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고 해도, 골방에 있다고 해도 믿지 말라고 했다. 광야는 “공개적 그리스도”를 말하고, 골방은 “은밀한 그리스도”를 뜻한다. 모두 적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외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장창훈이다. 어딘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름이 같을 뿐, 누군가 나와 똑같은 행실을 한다면, 그는 거짓 장창훈이다. 나는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정녕코 말하였다. “재림예수”는 곧 “초림예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