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하나다”는 명제를 나는 참 좋아했으나, “진리는 하나의 관점이다”로 착각했음을 뒤늦게 깨닫고, 인지했다. 진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며,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진리는 1개로 고정될 수 없다. “사람은 남자다”라고 남자는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모순이다. “여자는 사람이 아니다”를 전제해서 그렇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다”도 틀릴 수 있다. 남자면서 남자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진리는 보수와 진보다”로 정의될 수도 없다.
성경에서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같은 사건을 놓고서 정반대로 보여준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관점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건은 발생했고, 보는 위치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조선말 미국이 강화도에 나타나 개항을 요구했다. 그때,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을 고수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미국과 싸우는 것이 곧 ‘그들의 진리’였다.
조선말 그 불행한 시기처럼, 이스라엘도 불행한 시대를 살던 때가 있었다. 예수님이 태어난 시점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멸망당하던 그 시점에 태어났다. 국가는 이미 멸망했고,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서 ‘속국으로서 이스라엘 독립’이 보장되었으나, 멸망이 눈앞에 다가오던 시기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지나고, 40년후 이스라엘은 멸망했다. 쇄국정책 때문이다. 개방정책을 펴야만 살았는데, 지나친 쇄국정책으로 멸망한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내부적으로 ‘에스라의 쇄국정책’을 고수했다. 무장독립투쟁은 혼혈주의에 반대하는 지나친 율법주의이며, 로마제국과 융합될 수 없었다. 포로생활에서 막 돌아온 시점에 에스라는 이방여인과 결혼한 모든 사람을 조사해서 강제이혼을 결정한 위대한 인물이지만, 로마제국이 지배하던 식민지 치하에서 이방인을 계속 거부하는 것은 지나친 율법주의일 수 밖에 없다.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다.
예언은 시대를 따라 다르게 실현된다.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걸렸을 때, 문병가서 면전에서 “죽을 것이다”고 예언하고 궁궐을 나서는데,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으면서 참회하니, 1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임해서, 발걸음을 돌이킨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3일후에 나을 것이다”고 다시 예언한다. 하나님의 말씀도 1시간만에 바뀔 수 있다. 이사야가 말을 바꾼 것이 아니고, 히스기야가 마음을 바꾼 것이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개방정책과 쇄국정책으로 풀이된다. 마태복음 4:16에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추었도다”라고 되어있다. 빛이 흑암과 사망의 땅에 있는 백성에게 비춘 것이다. 반면, 요한복음은 1장 5절에서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되어있다.
누가 옳고 틀림이 아니다. 관점의 차이다. 흑암속에 앉아있는 자들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자가 간혹 있었다. 세례요한의 제자중에서 안드레와 요한이 있었고, 대부업을 하던 자중에 마태와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라고 기록할 수 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자들의 관점에서는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가 적용된다. 밀물과 썰물의 조류현상을 내다보는 국제적 안목을 가지는 것이 지도자의 통찰력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보았던 것이다. 로마제국속에 속한 이스라엘 속국의 풍전등화를 걱정하면서, 민족이 살 길은 ‘로마와 평화조약’을 맺는 것이니, 그렇게 하도록 3년 목회사역을 통해서 강하게 설파하셨으나, 유대 지도부는 거절했다.
인생은 살면서, 쇄국정책과 개방정책은 ‘밀물과 썰물처럼’ ‘전쟁과 평화처럼’ ‘YES와 NO처럼’ ‘만남과 결별처럼’ ‘시작과 끝처럼’ 함께 적용하면서 활용해야한다. 그래야 인생이 실패와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조선제국이 개방정책을 펼쳤더라면, 일제 식민지 35년은 보다 부드럽게 지나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