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로운 교회로 옮기면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인격적 교제활동에 신경 쓴다. 예수님은 돌아가신 분이지만, 말씀과 신앙 공동체를 통해서 그 향취가 함께 머물러 계신다. 교회는 곧 그리스도의 몸이며, 육신이며, 반석이다. 신앙공동체로서 교회는 식사문화가 있어서 좋다.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성도가 10만명, 100만명을 말해도, 하나님이 떠나면, 하나님을 믿는 보람이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 60만명은 신광야에 머물러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중에서 약속을 믿은 2명만 가나안에 들어갔다. 하나님의 약속은 숫자에 있지 않다. 각 개인마다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느냐가 중요하다. 마태복음 25장에서도 열처녀가 무리지어서 신랑을 기다렸지만,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만 맞았다. 각각 자신의 등불과 기름이 중요하다. 열처녀가 10만명의 성도일 수도 있고, 100만명일 수도 있지만, 기름과 등불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새롭게 옮긴 교회가 좋은 것은 사람의 가치를 알아주기 때문이다. 1사람이 소중한 것이다. 옛날 교회는 1사람을 모래 한알로 봤다. 혹은 사회적 명성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했다. 교수와 정치인을 데려오면 VIP전도를 한 특별 공적자로 취급했다.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을 전도할 때, 문둥병에 걸린 교만한 이방인으로 봤다. 그리고 치료하고 치료비도 안 받았다. 생명의 귀중함으로 대했더니,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을 섬기는 인물로 바뀌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와 한 달란트를 맡은 종들이 나온다. 사람일 수도 있다. 사역일 수도 있다. 크든, 작든, 다섯 달란트를 맡았다고 믿고서 행한 자는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한다. 한 달란트 맡은 자는 맡은 것을 작게 여겼는지, 땅에 묻었다. 가치없게 생각한 것이다. 작은 것도 크게 생각해야한다. 생명은 지구보다 귀하다.
고린도전서 10장에 보면, 바울은 모세의 반석사건을 재해석하면서, “그들을 따라다니는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편지로 기록하였다. 그들을 따라다니는 반석이라니!!! 정말로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가운데 임재하고, 함께 계신다. 믿음없는 이스라엘 백성 60만명 가운데도 따라다니는 반석이신데, 주님의 십자가로 세워진 교회요, 주님을 믿는 성도들인데,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
“내안에 주님이 계시는가?” 그것을 물어야한다. 아멘!! 옛날 교회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의 철조망을 넘는 것인데, 무덤속에서 살아나듯 나는 십자가를 영접했다. 놀라운 표적이다. 그래서, 내가 새롭게 옮긴 교회가 친근하고, 포근하고, 좋다. 그 어디서 지금 다니는 교회를 만날 수 있으랴!! 십자가의 흔적이 그대로 담긴 아름다운 교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