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는 맛은 ‘암시와 복선’에 있다. 암시와 복선이 사라지면, 성경은 율례와 도덕과 철학으로 흐를 수 있다. 성경은 오묘하며, 드라마처럼 신비롭다. 작가는 ‘컵의 깨짐’으로 ‘곧 닥칠 사고’를 암시한다. 소설도 동일하다. 그것을 미리, 살짝, 숨겨서 보여준다. 이것이 복선(伏線)이다. 엎드려서 숨겨진 선분이다. 그 선분을 미리 발견해서 복은 키우고, 화는 줄이거나 피하는 것이 예언이다.
성경은 본래 구약만 있다. 구약을 읽을 때도 암시와 복선이 있다. 창세기는 훗날 출애굽기로, 신명기로, 열왕기상과 열왕기하, 예언서로 암시되고, 복선된다. 창세기 사건이 각각 다양한 장소와 시간에서 다르게 재현됨을 말한다. 그것을 발견하면서 읽을 때, 서로 다른 두 사건의 동일성을 발견할 때, 자신의 현실속에 일어난 사건을 이해하는 통찰력이 배양된다.
구약과 신약은 ‘1부’와 ‘2부’의 관계다. 단지, 유대인은 2부가 없다. 2부가 없는 유대인들은 그들의 성경으로도 드라마가 완성된다. 신약을 믿는 기독교인이 구약을 버리지 않은 것은 ‘연속극처럼’ 1부와 2부가 연결되어서 그렇다. 하나님이 창조주 작가요, 구약을 썼고, 신약도 썼다. 붓으로 사용된 자들이 곧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바울, 베드로 등등이다. 복음서를 기록할 때, 그래서 구약의 사건과 문장을 연결해서 기록했다. 그것을 발견하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면서, 성령의 감동이 미세하게 불어온다. 성경읽기는 드라마같다.
오늘은 3월 23일 누가복음 23장을 읽었다. ▲빌라도 재판 ▲헤롯 재판 ▲바라바 사면 ▲골고다 길 ▲두 악행자 ▲낙원 약속 ▲운명 ▲장례식으로 이어지는 가슴 아픈 사건이다. 가슴이 먹먹했다. ‘장례식’이라고 했으나, 묻힐 곳이 없어서, 성령에 이끌려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의 동굴을 임시로 헌물한 것 같다. 예수님조차 당혹스럽게 죽음을 맞았으니, 최고 시청률 드라마가 너무 갑자기 끝난 것과 흡사하다. 아!! 비극이여!! 23장에서 드라마가 종영되었다면, 비극이다. 그래서 24장을 읽어야한다. 십자가는 마침표가 아니다. 십자가는 마침표를 찍기 위한 가장 강한 반전의 복선이다. 정말로 재밌는 드라마는 맨 끝에서 사건이 완벽히 뒤집힌다. 유주얼 서스펙트나 양들의 침묵이나 쇼생크 탈출처럼 그렇다.
“계명에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누가복음 23:56)
누가복음 23장의 마지막 문장이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토요일이다. 금요일에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고, 운명하신 예수님은 무덤에 계셨고, 누가는 ‘안식일’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창세기 1장과 2장으로 연결된다. ‘안식일에 쉬더라’는 문장이 곧 과거와 연결하는 문법 장치다. 누가를 통해서 성령은 그것을 말씀하신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세기 2:1~2)
예수님의 3년 사역, 33년의 인생이 곧 ‘창세기 1장의 창조사역’이었다. 종교의 새로운 창조사역이었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 이후에 ‘안식일에 쉬더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이다. 성경적 상상력은 여러 가지로 펼쳐진다. ‘그들의 안식일’이 곧 ‘우리의 장례식’이 될 수 있다. 더불어, ‘창세기 안식일’로도 연상될 수 있다. 어떻게 연상하든, 감동은 다양하게 불어온다. 이것이 성경의 아름다움이다.
창세기 1장은 누가복음 1~24장과 같다. 그리고, 안식일에 쉬셨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무덤에서 쉬셨다. 도망친 제자들도 슬픔으로 고요했다. 그리고, 세상은 뒤집혔다. 안식일이 끝인줄 알았는데, 안식일이 끝나고서 유대인은 다시 월요일로 돌아가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새로운 안식일’을 맞이한다. 안식일이 연장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이다. 영원한 안식의 동산, 에덴동산이 곧 낙원이며, 생명나무가 그곳에 있다. 이것이 부활의 예수님이다.
드라마처럼, 암시와 복선을 연결하면서 성경을 읽게 되면, 예수님의 사역이 새롭게 보인다. 신약의 제자들은 이러한 창조력을 가지고 핍박을 견디면서 생생한 창조사역을 감당했다. 예수님을 통해서 제자들은 모두 낙원에 거하면서, 생명나무의 창조성을 먹으면서, 신앙생활을 했다. 지금 시대도 그러한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할 때다. 오늘은 유대인에게 안식일이고, 기독교인에게는 주일을 기다리는 토요일이다. 내일, 주님 만나러 가야겠다.
※ 신약은 구약을 근거로 작성되었다. 신약을 읽을 때는 구약의 사건과 문장이 일치하거나 비슷한 것이 자주 나온다. 그것은 그 사건밑에 보물이 묻힌 것이다.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그 사건과 인물과 문장을 상호 연결하면서 깊게 파보면, 감동의 보물이 쏟아진다. 유형학(類型學)적 성경해석이 여기에 해당한다. 신약이 곧 구약을 향한 복선(伏線)이 된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은 ‘남자와 여자’처럼 서로 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