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피싱을 당하는 이유는 금융정보를 너무 몰라서 그렇다. “지상낙원이다”라고 말할 때 속는 이유는 북한을 너무 몰라서 그렇다. 알면 당하지 않는다. 알면, 주님을 알기 때문에 당하지 않는다. 모르면, 예수님을 ‘귀신의 왕’으로 착각한다. 알면, 예수님을 ‘평강의 주님’으로 깨닫는다. 오늘은 3월 24일 누가복음 24장을 읽었다.
누가복음 24장은 현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현대인들은 부활의 주님을 직접 볼 수도 없고, 주님을 만난 제자들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초상화가 남겨진 것도 아니다. 만약, 예수님이 꿈속에서, 초현실세계에서 나타나셨다고 하자. 그가 예수님인줄 어찌 아는가? 대략난감이다.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인줄 모를 정도로 얼굴이 많이 바뀌셨으니, 누가 예수님을 알아보겠는가!!
제자들 가운데 직접 나타나서,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데 상당히 낭패를 당한 사건을 기억해야한다. 누가복음 23장 36~42절이다. 예수님은 손과 발을 보이시며 만져보게 했고, 생선을 먹는 시범까지 보이셨으나, 제자들은 반신반의했다. 영안이 열려서 주님을 만나도 믿어지는 것은 쉽지 않다.
누가복음 24장은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믿음의 방향을 정확히 제시한다. 두 천사가 여인들에게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고 했다. 두 천사의 말을 듣고, 여인들이 말씀을 기억하므로 사도들에게 “주님이 살아나셨다”고 외쳤다. 두 천사가 현대인에게 말한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어떻게 말씀했는지 기억하라”라고.
엠마오로 낙향하는 두 제자는 슬픔과 실의에 빠졌다. 과거에 낙방한 것보다 더 침울했다. 대통령 선거결과, 낙선했을 때처럼 두 제자는 상심했다. 후보가 낙선하면,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겠는데, 예수님은 죽었고, 시체까지 사라졌으니, 두 제자는 고향으로 갔던 것이다. 그런데, 엠마오로 내려가면서 만난 어떤 나그네와 대화에서 두 제자는 예수님의 고난을 다시 알게 된다.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라고 되어있다. 성경에 써진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할 때, 두 제자는 예수님의 사역이 다시 보였던 것이다.
두 제자는 고백한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성경을 풀어줄 때, 마음속에 성령의 뜨거움이 임한다. 성경강론은 예수님을 성도가운데 초청하는 거룩한 식사다. 제자들이 모여있을 때에도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라고 하셨다. 성경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보게 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16장 부자와 거지 나사로 사건에서도,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다고 해도,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어서 그들의 말을 들어야한다고 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나사로가 살아났고, 예수님이 살아나셨다. 살아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오직 말씀을 풀어주고, 성경을 설명할 때, 예수님을 알게 됐고, 엠마오로 낙향하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자, 예수님이 보이지 않게 됐다. 부활의 주님을 직접 만나는 것은 믿음과 별개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깨닫고 알아야한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온 ‘모세와 선지자들’은 현대인들에게 성경말씀과 교회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