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스는 ‘상징적 계시록’을 연상시킨다. 즐거운 공포영화다. 즐겁다는 것은 음악이요, 공포는 살인이다. 어스에 등장하는 살인은 정당방위들이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우리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①우리 ②누구 2가지 질문을 묻는다. 우리는 ‘적’인가? ‘친구’인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매우 모호한, 그래서 ‘거울’로 표현된다. 가장 확실한 은유는 복제인간들이 멕시코와 미국의 경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모두 손에 손을 잡고서 미국의 울타리를 치는 것인데, 이것은 ‘장벽’을 말한다.
어스는 미국우선주의를 매우 날카롭게 비판한 영화이며, ‘재앙’이라고 말한다. 성경말씀을 이용해서 정교하게 미국사회를 파고들었다. ‘30’은 한 세대를 의미한다. 어스에서 ‘30’은 심판의 때를 말한다. 1986년에서 30년이 지난 2016년에 미국은 극보수가 일어나면서, 지금의 트럼프가 당선됐다. 감독은 이것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 같다.
1111은 너무나 좋은 숫자다. 그러나, 영화 어스는 정반대로 해석한다. 이렇게 해석될 수 있음을 감독은 말하고 있다. 11:11에서 ‘11’이 도플갱어일 수도 있다. 즉, 쌍둥이다. 영화 어스는 복제인간으로서 ‘도플갱어’이다. 그리고, 부모와 아들과 딸, 4인 핵가족이다. 단란한 가족앞에 괴상한 가족이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이것이 거울인데, 실제 사건이다. 어느날, 복제인간들이 지하감옥을 탈출해서 지상으로 나왔고, 각자 자신을 복제한 원본을 제거하고, 지상을 차지한다는 놀라운 계획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예레미아 11:11]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US는 ‘우리들’이며 ‘미국’이다. 영화 대사에 정확하게 말한다. 우리 미국은…. 복제인간들이며….. 지상을 차지할 것이며….. 그런데 그것이 재앙이 될 것이며…. 마지막 장면이 ‘울타리’로서 ‘우리’가 펼쳐지는데…. 멕시코의 장벽을 쌓아올려서 미국을 보호하겠다는 트럼프의 계획이나, 부자들의 높은 대문이나, 소외된 계층을 이해하지 못하는 탐욕의 늪이나….. 결국 그것이 인류의 재앙이 될 수 있다…..
루피타 뇽은 누구인가? 레드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매우 독특하고, 관객을 혼동시키면서, 복제와 원본을 무력화시킨다. 이 영화가 난해하면서 ‘우리의 경계’를 허무는 뇌관이 ‘레드의 정체성’에 있다. 복제인간 레드는 실제 레드다. 이 영화는 “복제와 원본은 없다”는 장치를 하고 있다.
복제인간이 가위를 들고서, 토끼를 먹으면서 지하실험실에서 생존했는데, 그 가위는 단절을 의미한다. 또한 가위의 손잡이는 ‘11’을 말한다. 11:11이 곧 가위다. 서로가 연결된 것을 잘라내야만, 어느 한쪽이 살 수 있다고 말하는데, 가위가 가위를 자르면, ‘가위’는 존재할 수 있을까?
미국과 멕시코는 가위처럼 ‘11’이 겹쳐서 존재하는 상대국가인데, ‘11’이 분해되면, 가위는 더 이상 필요없게 된다. 소금이 짠맛을 잃은 것과 같다. 진보와 보수도 ‘11’이다. 그렇다면, 가위는 무엇을 잘라야하는가? 영화의 본질로 말하자면, 예레미아에서 말하듯, 근본된 죄악을 제거해야한다. 복제인간도 원본인간도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탐욕이 제거대상이며, 복제인간을 그대로 방치한 각자 인간들의 내면적 우상을 스스로 제거해야한다.
30년전, 여자 주인공(루피타 뇽)은 거울의 집을 방문했다. 그곳은 토끼 실험실인데, 국가적 인간 복제 프로젝트가 몰래 진행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여자 주인공은 자신의 복제인간을 만났던 것이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그 어느날, 다시 그곳을 방문했는데, 밤 11:11에 그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우연이 계속 겹칠 때, 그런 느낌”이라고 여자 주인공은 불길한 재앙을 말했는데,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게 하고,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그 경계선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어스는 ‘예레미아 11:11’을 인용해서 성경구절을 소품으로 사용했으나, 소품으로 사용된 그 인용구절이 어쩌면 영화의 심장일 수도 있다. ‘하나님을 버리면, 재앙이 온다’는 것이다. 삶속에서 ①하나님 ②하나님 말씀 ③하나님 사랑을 갖고서 하루를 진지하게 살아야겠다.
더불어 지금 내가 누리는 번영과 풍요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된 것을 알고서, 그 누군가에게 나눔을 해야한다. 토끼들은 식량이 될 수 있지만, 복제인간은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영화 어스에서는 복제인간이 있다고 했으나, 현실세계에서는 복제인간이 없다. 모두 닮은 인간들이다. 대문을 경계로, 자색옷을 입은 부자와 누더기를 입은 거지는 서로 복제된 인간들이다. 부자는 자신이 원본이라고 하겠지만, ‘내가 원본, 너는 복제’라는 그 생각을 하는 쪽이 ‘가짜요, 복제요, 거짓’에 해당된다. 사람은 모두 귀하다. 상대를 단절시키면, 자신이 단절된다. 이것이 ‘가위질당하는 가위’다. US의 묵시를 깊게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