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4월 12일 마가복음 12장을 읽었다. ▲포도원 연쇄 살인사건 ▲모퉁이 머릿돌 비유 ▲가이사 세금문제 ▲7형제 부활논쟁 ▲가장 큰 계명 ▲그리스도와 다윗의 관계 ▲헌금의 액수 문제가 나온다.
‘가이사 세금문제’에서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를 말씀하셨다. “로마당국에 세금문제”를 묻자, 예수님은 “하나님께 바칠 사랑의 세금문제”를 그들에게 말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바칠 경제적 세금으로 헌금은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이 생활비 전체여서 “많이 넣었다”고 말씀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많은 것이다.
성전유지에는 과부의 두 렙돈은 푼돈에 불과하다. 헌금하는 마음의 향기는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생활비 전부’를 바치듯, 생활전체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인생은 하나님의 것이다.
포도원 연쇄 살인사건 비유는 매우 독특하다. “정답은 예수님”으로 설정하고 읽으면 밋밋하지만, 연쇄살인범이 누군지 뻔히 알고 있는 포도원 주인이 계속 ‘종들’을 보낸다는 것이 도발적이다. 경찰에서도 잠복근무를 서듯이 범인을 유혹하는 미끼를 던지기도 한다. 포도원 주인이 결정적 물증을 갖지 못한 것인지, 무엇인지, 종들이 돌아오지 않음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인지, 마지막에 아들까지 보냈다. 아들이 죽임을 당하자,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을 진멸했다. 이것을 보면, 포도원 주인은 ‘군사력’도 가지고 있었고, ‘사법권’도 가진 인물로 추정된다.
1) 예수님 = 사랑하는 아들
2) 농부 = 유대 종교 지도자
이것은 100% 정답이다. 왜냐면, 마가복음 12장 12절에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고 했다. ‘자기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목사들)이다. (마가11:27)
이제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겼다. 여기서 다른 사람들은 누구인가? 지금 포도원을 경작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종교 사명자를 뜻한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사랑의 소출’을 받길 원하신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릴 것을 드려야한다. 포도원 연쇄 살인사건 비유에서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다”고 했다. ‘소출의 얼마’를 말한다.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어떤 소출을 드려야할까? 마가복음 12:28~34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가장 큰 계명)
** 이웃의 개념은 누가복음 10장 착한 사마리인 비유 참조.
# 옛날 교회에서 친구가 며칠전 전화했다. 이런 저런 소식을 나눴다. 전봇대처럼 장로들이 서서 고압적으로 성도들을 맞이하는 그 문화는 고쳐졌을까? 담임목사는 예배전 성전밖에 나가서 성도들을 맞이할까? 예배가 끝나면 성도의 위치에서 성도와 함께 성도의 자세로 교제를 나눌까? 점심식사를 성도와 함께 평등한 식탁교제를 할까? 예수님은 창녀와 세리와 함께 식탁교제를 하셨다. 성전의 주인이 성도가 되었을까? (국회는 국민이 주인이라고 하지만, 가보면 국회의원이 주인이다. 성전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성도가 주인이어야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면서, “목사가 성도가 되어서, 섬김을 다하는 교회가 되면 참 좋겠다”라고 말해줬다. 이것은 성경말씀인데, 어떻게 받아드리려나. 교회가 따뜻해지려면, 높은 자가 낮아질 때 가능하다.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이 섞이면, 따뜻한 물의 온도가 차가워지면서 차가운 물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높은 자가 낮아지고, 낮은 자가 높아지는 것은 ‘성도의 교제’이다. 높은 자가 더 높아지고, 낮은 자가 더 낮아지는 것은 세상권력의 기본 모형이다. 교회는 ‘인자의 권력’이 흘러야 따뜻해진다. 교회권력은 ‘빈익빈 부익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눅22:26~28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PS. 친구의 말에 따르면, “(요즘은 목회자가) 늘 예배전 앞에서 성도맞이하고 예배끝나면 찾아다니면서 인사하고 식사도 같이한다”고 했다. 보다 따뜻한 교회로 변화하나보다. 성령은 그 어디든 모든 교회에 봄으로 임재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