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과 취준생들에게는 ‘인구론’이 굉장히 익숙한 말이겠지만, 나는 요 근래에야 인구론이 무엇인지 알았다. 퇴근하고 습관적으로 틀어놓는 9시 뉴스를 보지도 않고 듣는 둥 마는 둥 하는데, 앵커가 인구론 어쩌고 하더라. 새로운 이론인가 싶어 뜻을 찾아보니 기가 막힐 노릇. 인문계의 90%가 논(론)다. 오죽하면 저런 말도 안 되는 신조어를 바른말 고운말 쓰는 앵커가 언급할까 싶어 눈물이 찔끔 났다.
내가 대입을 치를 때만 해도, 골치 아픈 이공계 수학이 싫어서이기도 했지만 많은 학생들이 제조업이나 IT 분야 일을 할 것이 아니라면 취업을 염두 해 두고 무난한 경영/경제학을 포함한 사회과학, 인문학을 지원하던 때였다. 그 때는 그런 과가 인기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인구론이라니. 비이공계 전공자로서 나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 전공 선택도 트렌디 하게 해야 하냐 이런 생각이 들며 억울하고 원통한데, 한 여학생 인터뷰 기사를 보니 더 절절하다.
“고등학교 때 하라는 대로 공부해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대학에 입학했고, 4년 간 취업준비도 열심히 했는데 도대체 뭘 잘 못해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중략) 면접에서 ‘그런 과는 취업이 안 된다’고 하는데 이럴 거면 도대체 왜 인문계 학과를 운영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맞는 말이다. 그녀가 무슨 잘못이 있는가? 10대 후반은 인생에서 최고로 우울한 고3 시절을 보내며 죽도록 공부하고, 20대 초중반은 캠퍼스 생활 따위 쳐다보지도 않고 취업 준비만 했는데, 전공이 인문계라고 싫다니. 전공을 사회/경제 트렌드에 따라서 하라는 교육학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좀 데려와 보길. 아. 그 학자도 취직을 못 해서 억울해 하고 있으려나?
그런데 또 아이러니 한 것은, 한 쪽에서는 인문학 열풍이라는 것이다. 서점에는 인문학 서적들이 연일 베스트셀러로 올라오고, 인문학적 사고는 창조적 사고의 토대로 찬양 받고 있으며, 인문과 결합한 새로운 시도들이 찬사 받고 있다. 이러한 혼란의 카오스에서 청춘들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 본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매 고비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훗날 더 좋은 성적을 얻을지, 더 취업하기 좋을지 눈치보기 급급할 뿐이다.
교육이 이런 것인가? 교육이론은 교육의 목적 측면에서 국가/사회적 차원에서나 개인적 차원에서 인격 완성이나 자아실현이라는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원래의 목적대로라면, 우리가 문과를 선택했다고 해서 기업 면접관에게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라고 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취업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