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十字架)는 가혹한 형벌이지만, 각자가 짊어질 십자가의 멍에는 아름다운 것이다. 혹여, 형벌을 받을 죄의 짐으로 발생하는 십자가의 멍에일지라도, 속죄의 길이 된다면 아름다운 것이다. 언젠가, 교회에서 목사님이 “김영삼 대통령의 장례식 방송에서 어떤 성직자가 ‘인간 김영삼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했다”면서 “그 기도가 가장 큰 기도다”라고 알려주셨다. 아멘!!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 넉넉하지 못하고, 상대적 빈곤층에 속해서 살아야한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버닝썬 사태’를 조명하지 않아도, 금수저와 빈수저의 차이는 너무 극명하다. 질량보존법칙에 따라 누군가 많이 가지면 누군가 적게 가지고, 누군가 너무 많이 가지면 누군가 극빈층에 떨어진다. 전쟁의 시대는 끝났어도, 경제적 침탈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제도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각종 사회현상앞에서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돌아온 탕자의 죄, 집안에 있는 장자의 은밀한 죄까지, 인생은 죄의 미세먼지에 둘러 쌓였다.
“인간 장창훈의 죄를 용서하소서”
내 기도제목이 되었다. 내 주변에 있는 지인들의 죄를 놓고도 깊은 침묵으로 기도하기로 다짐한 귀한 설교말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