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대학생이면, 민주주주를 염원하며 애창했던 노래다. 타는 목마름으로 권력을 쟁취하니, 목마름이 해소되었을까? 갈증이 해소되었나? 나는 날마다 목마름으로 커피를 마시거나, 보리차를 끓여 마신다. 목마름은 곧 찾아오는 미세먼지와 같다.
교회 목사님의 추천을 받아 읽게 된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에서 챕터6(지복설교)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내가 얼마나 성경을 모호하게 알고 있었고, 허무한 헬륨풍선처럼 공상했던지, “뻥” 터질 수밖에 없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660p가 넘는 꽤 두꺼운 분량의 신앙서적이어서, 나는 날마다 겨자씨처럼 읽어간다.
오늘은 5월 6일 누가복음 6장을 읽고,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의 챕터6(지복설교)의 몇페이지를 읽었다. 챕터6는 마태복음 5장 팔복장에 대해 설명한다. 네 번째 지복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라”이다. 이 구절을 놓고, 상당히 깊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해당 구절에 대한 번역본은 아래와 같다.
(개역개정)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공동번역)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새번역)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 의를 위해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다 얻을 것이다.
(한문성경) 飢渴慕義的人有福了.因為他們必得飽足。
의(義)는 추상명사다. 과연 의로움은 무엇인가? 의로운 행실을 하면, 국가적 명예로 무궁훈장을 받을 수도 있고, 의인상을 받는다. 그들은 의인인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인가? 의(義)는 추상명사인데, 예수님은 물질명사인 밥과 물에 비유했다. 의(義)의 구체적인 내용은 마태복음 5장과 6장과 7장과 8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뷔페처럼 의(義)가 널려있다. 그것을 누구든 먹고, 마실 수 있다.
한문성경에서는 모(慕)가 사용되었다. 의(義)를 연인을 그리워하듯 사랑하고 사모하는 것, 사랑의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의를 갈구하는 것, 그러한 자에게 복이 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판결하실 것이다. 세상이 의롭다고 하면, 하나님은 불의하다고 판결한다. 위 성경구절의 핵심이다. 누가복음은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
[눅6: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우리는 자주 닮은꼴의 비례식으로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믿고 싶지만, “이와 같이 이렇지 않다”는 상황이 복음서 곳곳에 나타난다. 목마른 자는 배부르고, 배부른 자는 목마르다. 단도직입적으로 의인은 죄인이고, 죄인은 의인이다. 자색옷 부자는 음부에 가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 간다. 부자가 특별히 무엇을 잘못했을까? 믿는 성도는 의(義)에 있어서, 날마다 굶주리듯, 목마르듯, 연모하듯, 행해야한다. 점심밥 찾듯이 의의 밥과 반찬과 물을 찾아서 행해야, 하나님께서 그러한 심령을 향해 ‘의에 살아있는 자’로 판결하실 것이다.
** 의(義)는 羊(양)과 나(我)의 합성으로, 사람을 대신하는 희생양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