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는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啓示)다. 계시(啓示)는 열어서(啓) 보여줌(示)이다. 啓는 문을 활짝 여는 모습이다. 계시는 어떤 사건의 내면이 확실히 드러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사건이 있었을 때, 광화문은 잔치를 열었고, 안국동은 초상집이 되었다. 광화문에는 촛불파, 안국동에는 태극기파가 있었다. 같은 탄핵사건에 대해, 보수의 관점과 진보의 관점이 각각 정반대다. 이 땅과 하늘의 관점이 정반대일 수도 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을 볼 때 ‘거룩한 택한 백성’이라고 여겼으나, 이사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소돔과 고모라”(이사야1:10)라고 경고한다. 촛불파가 환호성을 질렀고, 태극기파는 초상집이 되어서 애곡했다. 하나님께서 위에서 내려다보시고, 무엇을 말씀하실까? 하나님은 촛불파와 태극기파를 포함해서 탄핵을 결정한 헌재의 판결까지도 판결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이다.
1장 8절에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참외밭의 원두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다”고 했다. 고구려말 안시성 전투처럼, AD70년 로마군대에 포위된 유대의 독립군처럼, 몽고군에게 내몰려 강화도에 처박힌 삼별초처럼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남유다의 마지막 상황이다. 이들이 잘못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들은 주일성소, 십일조, 각종 집회를 성실히 지켰는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염증’(厭症)을 느꼈다고 판결한다. 이들이 기도하려고 손을 펼 때, 하나님은 눈을 감았다. 손에 피가 가득해서 그렇다.
하나님은 6가지를 요구하신다. ①악한 행실을 버릴 것 ②선행을 배울 것 ③정의를 구할 것 ④학대받는 자를 도울 것 ⑤고아를 위해 신원할 것 ⑥과부를 위하여 변호할 것 등등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해서 자녀로 양육했으나, 딸처럼 길렀으나, 창기(娼妓)가 되었음을 개탄하신다.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이사야1:21)고 했다.
[이사야1:24]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
하나님은 창기가 된 이스라엘 지도부를 향해 “내 대적, 내 원수”라고 전쟁선언을 하신다. 이스라엘은 외적의 전쟁속에 하나님을 찾았으나,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심이 이미 하나님을 떠났고, 거짓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그 속에는 죄악이 가득하니, “대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줬을 때, 하와는 이미 뱀의 첩자요, 트로이 목마다. 속을 보고 판단해야한다. 수박도 속이 익었는지 ‘통통통’ 두드려보는데, 종교를 선택함에 있어서 성령이 계시는지, 하나님의 거룩함이 있는지 면밀히 살피고서 ‘이단의 루비콘강’을 건너야한다.
강남에 빌딩 10채를 가진 어떤 사람의 자신감을 목격한 적이 있다. 우주의 건물주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도의 자신감은 어떠하고, 믿는 구석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어떤 종교든, 교회든, 단체든,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상품처럼 여긴다면 이사야서 1장의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성경을 묵상하면서 기록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