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새물결 플러스)을 소개받고, 틈틈이 읽고 있다. 내가 철저히 무지(無知)를 고백한 책이다. 가령, 외국인이 악수하자고 조선인에게 손을 내밀자, 구걸하는 것으로 착각하듯, “오라”고 외국인이 부르면, 그것이 개를 부르는 것으로 오해해 분노하듯, 히브리인의 문법체계를 알지 못한 채, 나는 성경을 국문법으로 이해했다. 큰 맥락의 흐름은 이해할 수 있으나, 어떤 부분에서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다. 가령, “동쪽”이다. 히브리인들은 철저히 중국인처럼 중심적 사고관을 가지고 있어서, 동쪽은 오랑캐로 생각했다. 동이족(東夷族)처럼, 동쪽으로 가면 그것은 추락이며, 타락이고, 버려짐이다. 우리나라와 정반대다. 우리는 좌천(左遷)을 안 좋은 것으로 본다. 오른쪽은 ‘옳은 쪽’으로 여기며, 해가 뜨는 쪽이니 좋은 쪽이다. 동쪽을 보면서 기도한다. 히브리인들은 동쪽을 등지고 서쪽을 향한다. 성경에서 ‘동쪽’은 ‘저주와 흑암과 사탄’의 방향이니, 나는 성경적 방향의 속성을 듣고서 충격이 너무 컸다. 이런 사고를 가졌으니, 십자가도 오해했던 것이다.
우리는 두괄식과 미괄식에 익숙하다. 처음 시작할 때, 강하게 설명해서 “확” 끌어드려야한다. 끝날 때, 마침표를 확실히 찍어야한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은 ‘과정을 중시하는 중괄식’으로 표현한다. 중앙에 핵심이 들어있다. 이것을 히브리 평행법(ABCBA)라고 부른다. ‘중괄식’을 발견하고, 나는 무지의 하늘이 떠나갔다. 그때 충격은 3일의 정전(停電)이었다.
오늘은 이사야서 2장을 읽으면서, 중심내용이 무엇인지 가만히 살펴보았다. 얼핏 보기엔 첫문장과 끝문장이 중심같지만, 자세히 파악하면 ‘야곱의 범죄’가 핵심이다. 야곱의 범죄를 중심에 놓고서, 독수리 날개처럼 펼쳐져 있다. (이것은 개인적 견해이므로, 참고사항이다.)
내 인생의 삶을 돌아본다. 과연, 책꽃이에 있는 수많은 책들중에서 성경책은 어느 부분에 위치하는가? 가장 높고 중요한 곳에 있는가? 성경책이 없으면 살 수 있는데, 돈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내 삶의 중심은 정녕 무엇인가? 지난해 2월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성경을 알고 싶습니다”라고. 그리고, 돌풍에 떠밀리듯, 새로운 곳으로 교회를 옮겨서 성경을 읽는 관점을 배웠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행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