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충격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발전이 없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냥 적당히 신문배달원에서 우유배달원에서 보급소를 하면서 그렇게 살았을 것 같다. 신문배달원의 직업을 폄하할 이유는 없지만, 내 인생의 숨겨진 달란트를 개발하지 못한채 그저 그렇게 자족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나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한다.
충격은 곧 당구공만 해도 충격적이다. 큣대없이 움직이는 당구공이 있던가? 나에게 수많은 큣대가 올지라도 나는 오직 나의 하나님이 내 인생의 당구공을 밀쳐주길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내 인생의 시작에서 중반에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큣대만이 ‘승리’였다. 나의 충격은 언제나 그것이다.
오늘은 몹시 슬펐다. 가슴 한구속이 뻥뚫린 듯, 나의 무능과 나의 부족과 나의 못남과 나의 실력없음을 한없이 한탄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그것을 행할 수 있을까, 그냥 하늘을 보면서 내가 원하는 그것 하나를 간절히 바랬지만, 사람이라서 배고픈 것은 금방 인지한다. 그래서 더 슬펐다.
하루를 마감하고 오늘은 든든한 나의 친구를 얻었다. 데스크탑이다. 늘상 노트북 때문에 속상했는데, 나의 하나님은 역시나 날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바람따라 내가 갔던 곳에서 마지막 정기세일을 하다니, 일체형 데스크탑을 샀다. 무지 기뻤다. 이제 나는 까페보다는 집에 머물면서 밖보다는 안에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을 만난다고 한들, 내 인생가운데 내가 간절히 바라는 그것이 이뤄질까? 결단코 그렇지 못할 것 같다.
그저 옛날식으로 변하지 못하는 그러한 습관은 모두 버려버리고, 새롭게 모든 것을 행하고 싶다. 적당주의는 실패한다. 나는 그렇게 인생을 때우고 싶지도 않다. 사랑에 실패했던 내 인생이라서 요즘은 내 시간이 금쪽같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누군가 날 만나자고 해도, 과연 그것이 얼만큼 간절한지, 그 만남이 얼만큼 절실한지 생각해본다.
시간이 남으니까 만나는 그런 만남이거나, 점심시간에 맞춰서 만나는 만남이거나, 혹은 그 장소에 지나가니까 만나는 그런 만남은 일절사절이다. 나는 사람들과 만남을 갖기 위해서는 최소한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그 사람만을 위해서 오전 혹은 오후를 비워버린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그 사람만을 위해서 특별한 영상 인터뷰를 준비하고, 그 사람이 더욱 특별히 나와 인연이 닿는다면 나는 전자책도 제작하고 내가 하고싶은 모든 것으로 행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그렇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