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無知)가 담대하다. 성경을 모르니, 허탄한 내용으로 성경을 새롭게 쓴다. 내가 그러했다. ‘신앙, 그 오해와 진실’(새물결 플러스) 신앙도서를 선물로 받아, 꼼꼼이 읽고 있다. 내 지식은 미로를 빠져나오듯, 성경의 진리를 새롭게 영점-조정한다.
챕터 14장 ‘술은 입에 대지도 말라고?’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나는 술을 마시는 것을 범죄라고 배웠고, 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해병대 시절 술중독에 빠진 적이 있었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오늘,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술에 대한 잘못된 편견, 술중독에 빠진 음주문화가 문제이지, 술 자체는 죄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술의 위험성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창14:18)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린 하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 대한 것이다.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라함을 축복했다. 예수님도 성만찬식에서 제자들을 그렇게 하셨다. “포도주”는 와인이다. 이 밖에도 성경인물들은 포도주를 유용하게 즐겼다. 예수님도 포도주를 탐하는 자로 소문이 났다. 성만찬식에서 포도주로 ‘희생의 피’를 비유하실 정도이니, 포도주의 긍정적 요소를 강조하신 것이다. 술은 잘 조절하면, 생활에 매우 유익할 것이다.
문제는 술에 대한 자제력이다. 커피를 마셔보면, 날마다 마실 수밖에 없다.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면 서로 마음이 공감되면서, 친밀감이 생긴다. 의사소통에 커피는 유용한 매개체가 된다. 커피 대신에 ‘술’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술은 갑자기 ‘통제력’을 해제한다. 젊은 날, 술에 대한 잘못된 습관을 갖게 되면, 통제력을 상실하고, 술의 족쇄에 묶이면 끝장이다.
나는 회의장에 종종 참석한다. 그때 나는 사람들의 발표 시간을 듣는다. 발표내용보다 발표시간이 내 관점이다. 말은 말할수록 계속 흘러나온다. 회의장소에 발표자는 20명, 1명이 10분씩 발표하면 200분이 소요된다. 이때는 3분안에 자신의 말할 내용을 간략하게 표현해야한다. 주제와 전혀 상관없이 “날씨 이야기와 경제 이야기”를 하면서 3분이 훌쩍 지나가면, 사람들은 핸드폰을 보기 시작한다. 말도 결국 습관이다.
말처럼, 술도 습관이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술은 다른 음료수와 달라서, 점점점 통제력을 잃게 한다. 술을 마시는 양에 대해 스스로 인지하면서, 술이 자신을 지배하려고 할 때, 그것을 멈추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 술을 다스리는 절제력이다. 술은 돈과 같고, 권력과 같다. 있으면 매우 좋지만, 그것들이 사람의 영혼을 지배하면, 끝장이다. 술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했으나, 술은 웬지 가깝게 지내고 싶지는 않다.
술을 마실 자유가 사람에게 있듯, 마시지 않을 자유도 사람에게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