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읽을 때마다, 스스로 생각한다. 무엇이 먼저 쓰였을까? 답은 없다. 마태와 마가, 둘은 서로 연결되었으나, 누가 누구의 것을 인용했는지 책속에 쓰지 않았으니, 우리는 알 수 없다. 단지, 마태와 마가는 서로 저작권 분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저작권의 출처 표시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 이 정도로 인용하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에 대해 저작권 침해가 전혀 없다.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은 마가복음을 많이 참고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이 저작권 분쟁이 발생하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너무 많이 인용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은 다르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에 없는, 전혀 새로운 내용과 스토리 전개를 가지고 있다. 요한복음에는 독창성이 있다. 마태와 마가와 누가는 공관(共觀福音)으로, 함께 보는 ‘공동의 관점’을 뜻한다. 그렇다면, 요한복음 독관(獨 觀)이라고 할 수 있다. 공관복음의 입장에서 요한복음은 ‘다른 관점’이다.
나는 공관복음이 쓰인 연대 추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서로 비교하는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 차이점을 발견할 때마다 신선한 충격이 일어난다.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그 물음에 답하면서 철학이 발생하고, 생각은 무한한 창공을 날아오른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비교하면서, 무엇이 먼저인가 스스로 찾아아가는 훈련도 신앙에 유익하다.
내게 묻는다면, 나는 마태복음이 먼저 써진 것으로 판단한다. 작가적 관점이다. 마태복음은 스토리 전개가 완벽하다. 반면, 마가복음은 스토리 전개가 없다. 마가복음이 먼저 쓰였고, 거기에 스토리를 입혔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 다음으로, 마가복음에 쓰인 ‘마태’의 이야기다. 마가가 먼저 썼다면, 마태의 이야기를 쓸 근거가 없다. 많은 사도들중에 왜 마태를 썼을까? 마태복음을 축약해서, 인용의 출처를 표시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내 개인적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