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장창훈 기자]=점심으로 뚝배기 불고기를 먹었다. 부글부글, 모락모락, 상큼상큼, 군침이 흘렀다. 숟갈을 들자, TV에 ‘뚫어’ 광고가 나온다. 무심결에 내 식욕을 사라졌다. 눈을 감고, 뚝배기를 지긋이 쳐다보니 다시 식욕이 증감했다. 맛있다. 깍두기를 입에 넣고, 고개를 드니, TV에 ‘뚫어’ 광고가 여전히 펼쳐진다. 나는 ‘원효대사’가 될 수밖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려달라고 주문했다.
삶은 밥먹는 일이다. 뚝배기 불고기를 먹는데,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면 금방 방해받는다. 밥먹는데, 화장실 이야기는 ‘파리’가 날라오는 것과 같다. 내 인생, 살아보니, 청결하기 어렵고, 너무 번잡하고, 정보는 화산폭발하듯 넘쳐난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찾기다.
운명론자는 이런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계시론자는 또한 어떻게 생각할까? 불확실성의 시대에 내가 그 식당에 들어간 것은 건너편 족발집에서 ‘점심식사’를 하지 않아서다. 족발집에서 나와, 뚝배기 불고기를 목격하고, 이끌려 들어간 곳에서 ‘식욕의 감퇴와 활성’을 경험했다. 부글부글 끓었다.
리모콘 단추 누르듯, 때로는 의도적으로 채널을 돌릴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이디야 까페다. 사람은 신이 아니라서,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집중할 때는 현실의 환경을 의식에서 초월한다. 집중을 통한 초월적 자아를 만나는 순간이다. 집중의 좁은 문을 여는 것은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세상 소리가 번잡하면, 집중할 수가 없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듯 떠나야한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다.
사람인지라, 나는 TV화면을 갑자기 튼 것에 대해, 종업원에게 사과했다. 작은 일이지만, 의사표현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식당에 들어간 순간, 손님과 종업원은 밥먹는 동안 맺어지는 ‘사회 공동체’에 속한다. 계산을 할때까지다. 계산이 끝나면, 식당의 사회적 관계는 해제된다. 뚝배기 불고기를 먹고서, 식욕의 변화를 목도한 사건을 기록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