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장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한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물증을 말한 것이다. 그들은 권력과 경제적 강국을 원하니,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사탄의 시험처럼, 그들이 바라는 그리스도를 요구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그리스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했다. ‘요나의 표적’에는 요나의 행함이 들어있고, 요나의 회개, 니느웨의 회개, 요나의 희생 등등 다양한 사건이 내포된다. 요나는 대신 바다에 내던져졌다. 그처럼 예수님이 대신 던져짐으로 그 시대를 구원하였다.
예수님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이때 제자들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떡”이 변질될 것을 걱정한다. 어딘가에 떡을 놓고서 왔던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도, 우리는 우리의 인식관으로 그것을 해석한다. 대략난감이다. 하나님은 공기처럼 편만하게 오늘도 말씀하신다. 그것을 어떻게 알아듣느냐가 관건이다. 잘못 알아들으면, 주님은 그것을 다시 말씀하시고, 알아듣기 쉽게 반복할 것이다. 베드로에게 “이방인 고넬료를 전도하라”고 말씀하실 때, 환상으로 “족발과 가증한 음식”을 3번이나 보이면서, “먹으라”고 하셨다. 음식계시로서 인식관을 교육한 것이다. 예수님은 “누룩”이라는 음식의 단어로서 제자들의 인식을 교육한 것이다.
이 시대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은 무엇인가? 깊게 상고해볼 필요가 있다. (바리새인은 민족주의자로서 율법을 지킨 종교지도자이고, 사두개인들은 종교귀족으로서 정치적 이권을 가졌다.)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으로 가셨다. 그곳에서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신다. 예수님은 2가지 질문을 하셨다. 믿는 성도는 2가지 질문에 답해야한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이다. “예수님의 근본”을 묻는 질문이지만, 2번째 질문은 믿는 성도와 예수님의 관계성을 뜻한다. 1번째 질문은 2번째 질문을 묻기 위한 기초질문이다. 결국, 예수님이 내게 누구인지, 그 질문에 답해야한다.
내게 예수님은 누구인가?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시몬 베드로와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16장에 나와있고, 세상은 예수님에 대해 어떠함은 수많은 신앙서적에 나와있다. 이제 주님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대답과 함께 십자가의 은혜와 책무가 주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