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본질은 ‘상대존중’이다. 겸손(謙遜)에서 겸謙을 자세히 보면, 벼화가 2개나 들어있다. 벼는 가을이 되면, 하늘앞에 감사의 인사를 한다. 겸손한 사람은 먼저 고개를 숙이면서, 상대를 반가워하면서, 활기차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우리끼리도 인사를 안하는데….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편하겠는가? 우리끼리 인사하고, 화목和睦하고, 기쁨의 용광로가 되면, 낯선 사람도 금새 낯설음이 녹아버릴 것이다. 인사문화, 참으로 회복해야할 추상명사임에 틀림없다. 그렇다. 익은 곡식은 언제나 인사를 한다. 감사의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는 벼는 하늘을 향해, 농부를 향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농부가 밑에서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벼는 폭풍우속에서 스스로 지탱할 수 없었고, 위에서 햇살이 따스함으로 보듬어주지 않았다면 벼이삭은 스스로 탱탱한 알곡으로 영글수 없었다. 겸손의 마음이 곧 고개숙인 벼이삭인 것이다. 화(和 )는 겸허하게 말한다는 뜻이다. 언제나 자신을 낮추면서 겸손하게 말하는 사람은 ‘기쁨’이 넘친다. 상대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한 것이다.
遜(겸손할 손) humility, modesty, condescension [孫, 손-손] 손자의 입장에서 나아간다. 손자는 가장 어린 사람으로서, 2단계나 낮은 입장이다. 누군가를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고 대한다면, 그러한 삶은 인격이 갖춰지게 되고 성품이 온순해지고, 겸손의 자세를 갖게 된다. 겸손은 낮은 자의 입장에 처하는 것이며, 상대를 높이면 그만큼 자신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상대를 할아버지로 높인다는 것은 자신은 손자가 된다는 것이니, 할아버지가 없다면 손자가 없듯이 상대가 없다면 자신도 없다는 의미이니 그처럼 겸손한 표현이 어디에 있을까? 겸손은 그처럼 진실함의 자세이다. (謙遜, 恭遜 不遜)
겸손은 곧 인자의 권력이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성육신이다. 성육신이 되었어도, 주님은 주님이다. 주님께서 죄수로 낮아졌고, 죽임을 당한 시체가 되셨다. 그래도 주님은 주님이다. 으뜸이 되려는 자는 종이 되어 섬기라고 했다. 섬김의 종이 되는 자가 곧 ‘왕’이다. 이것이 인자의 권력이다. “섬김의 종”이 곧 “왕”인 것이다. 섬김은 곧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며, 상대의 인격을 높이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어떠한 마음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겼을까? 복음서에 보면, 주님은 제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했다. 즉,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성도들로서 섬겼던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으로 섬기듯, 주님은 신부된 공동체의 제자들을 섬기면서 사랑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공동체에 계셨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도들이 성도들을 서로 사랑으로 존중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육체다.
언젠가 어떤 장로가 부부 교육을 하면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남편은 아내를 왕비로 모십시오, 왕비의 남편은 왕입니다. 아내를 종처럼 부리면, 종의 남편은 종입니다. 아내를 왕비처럼 섬기십시오, 아내도 남편을 왕으로 존귀함으로 섬기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