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방송 김신혁 학생기자]=10월 4일 금요일, 중간고사를 마무리 짓고 학교 재량휴업일을 맞이해 친구들 몇 명과 서울랜드로 놀러 가기로 했다. 평일이라 한산할 줄 알았던 놀이공원은 예상보다 많은 사람으로 인해 많이 북적였고, 놀이기구 한 번 타는 데에도 1시간씩 기다렸다. 기다림에 지쳐 놀이공원 내를 떠돌던 중 한 간판을 발견했다. ‘’3.1운동 &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서울랜드 항일역사체험전 역사 속 저항시인들’이라는 이름의 간판이었고, 지친 나와 친구들은 홀린 듯 전시관 안으로 입장했다.
입장하자마자 우리를 맞이했던 것은, 커다란 태극기였다. 하지만 이 태극기는 그저 평범한 태극기가 아니었고, 한국광복군이 다른 독립운동가에게 선물로 받은, 역사적 의의가 큰 태극기였다. 현대의 태극기와는 모양이 매우 달랐지만, 조금 더 엄숙한 분위기와 풍채를 지니고 있었다.
태극기 옆으로는 조그만 스탬프를 찍어 벽에 달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 수많은 스탬프 쪽지가 달려 있었고, 우리도 스탬프를 찍어 걸어두었다.
바로 뒤이어, 시 ‘님의 침묵’과 ‘나룻배와 행인’ 등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신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한용운 시인에 대한 소개와 님의 침묵 전문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용운 시인은 앞서 말했듯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으며,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中]』
그 옆에는, ‘청포도’, ‘광야’ 등의 시로 유명한 이육사 시인이 있었다. 이원록, 이원삼이라는 다양한 이름을 지내온 이육사 시인은 일본이 한글 사용에 대해 강력히 처벌했던 시기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한글 시를 지어왔다. 강인하며 굴하지 않는 의지를 뿜어내는 이육사 시인의 시는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이육사, 광야 中]』
이육사 시인의 뒤를 이은 시인은 이상화 시인이었다.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을 지으면서 일제강점기 말기까지 굳센 의지로 독립운동, 일제에 저항했던 시인이다. 그의 시인‘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전문이 새겨진 시비인 상화시비는 우리나라에서 세운 최초의 시비이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中]』
서울랜드 항일역사체험관의 마지막 시인은 윤동주 시인이었다. 영화 동주로 이미 잘 알려진 윤동주 시인은 누구나 다 알만한 ‘서시’, ‘별 헤는 밤’ 등의 시를 썼다. 젊은 나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20대에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그곳에서 모진 고문과 생체 실험 등을 당하며 지내다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타계했다. 하지만 그의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 서시 中]』
이렇게 4명 시인의 소개와 대한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여러 단체들을 소개하고 전시는 막을 내린다.
놀이공원에 와서 노는 것도 좋지만, 놀다 지친 사람들을 위해 저런 뜻깊은 장소를 마련해 준 것이 너무나 고마웠고, 자랑스러웠다. 굳이 이 체험관 전시를 보러 서울랜드까지 오라고는 당연히 말하지 못하지만, 만약 서울랜드에 놀러 왔다면 한 번쯤은 꼭 들러보는 것이 어떨까. 이런 작은 관심이 우리 역사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