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수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영화 ‘동주’ 촬영지
문화리더 : 장민정
문화리더 학교 : 대진여자고등학교
취재 장소 : 익산문화재단
지난 추석 연휴 동안 할머니댁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영화 ‘동주’ 촬영지라는 익산문화재단에 방문하게 되었다. 익산문화재단 건물은 본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식량 수탈을 위해 지었던 ‘익옥수리조합’의 건물이었다. 익옥수리조합은 1920년 전라북도 군산 및 익산 지역의 수리 관개 시설 확충을 목적으로 임익 남부 수리조합과 임옥 수리조합을 합병하여 설립된 것으로, 저수지를 만들고 갯벌 간척에 필요한 용수를 공급하는 일을 했다. 또한 홍수 방지와 관개수 공급, 그리고 간척 사업을 결합한 방대한 공사를 시행했는데, 이는 모두 일본으로 가져갈 곡식의 양을 늘리기 위함이었다.
광복 이후 일본이 남긴 흔적은 대부분 지워졌지만, 몇몇 건물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유난히 군산 주변에 많이 남아있는데, 그건 군산에 일제감점기 때 일본이 쌀을 운반하던 항구, 군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산항을 통해 들어오던 일본인에 의해 그 주변은 일본식 건물이 다른 곳에 비해 많아졌고, 그 영향으로 익산에 익옥수리조합의 건물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더불어 군산과 익산의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낡아 쓰러져가는 2층으로 된 일본식 목재 건물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 건물들에 비하면 익산문화재단이 들어선 그 건물은 보존 상태가 굉장히 양호한 편이다. 1, 2층 내부는 리모델링을 통해 작은 박물관과 도서실, 사무실, 세미나실을 만들었지만, 지붕과 맞닿아있는 3층, 가만 보면 옥탑방 같기도 한 공간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목재 건축물, 그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붉은 벽돌과 일본을 상징하는 일(日)자 모양의 창문을 가진 건물 외관은 멀리서도 이 건물이 일제강점기 당시에 일본인들에 의해 지어졌던 것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현재 이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 181호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영화 <동주>와 관련해 익산문화재단을 소개하기에 앞서, 일본의 흔적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3층은 <동주> 외에도 드라마 <이몽> 등, 많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의 촬영지였음을 알린다. <동주> 속에서 이 공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사촌 송몽규가 재교토 조선 유학생 회합을 주도했던 장소로 그려졌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영화 <동주>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다.
영화 <동주>는 제목만 본다면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민족시인, 윤동주 시인의 삶을 비추기 위한 영화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준익 감독도 언급했듯이 윤동주를 통해 잊혀진 독립운동가, 송몽규 선생의 삶을 조명하기 위한 영화였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철저한 고증으로 완성도 높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탄생시켰다는 호평이 많았다.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선생은 함경북도에서 함께 나고 자란다. 그들은 우리글으로 시를 쓰고 수필을 쓸 수 있는 세상을 바랐지만, 그런 세상을 추구하는 과정이 달랐다. 윤동주 시인은 일본의 감시를 피해 시를 썼고, 송몽규 선생은 총을 들고 중국으로 떠난다. 현재는 연세대학교가 된 연희전문학교를 함께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들은 분명 함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을 걷는다. 일본에서 송몽규 선생이 재교토 조선 유학생 회합을 주도하는 동안 윤동주 시인은 그간 썼던 한글 시를 영어로 번역하여 시집을 낼 준비를 한다. 결국 그들 각자의 꿈은 영화에서나 역사에서나 안타깝게 무너지지만, 모두가 꿨던 꿈, 광복은 마침내 이루어진다. 하지만 남은 거라곤 글 세 편이었던 송몽규 선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혔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미처 완성하지 못한 시집을 남긴 윤동주 시인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독립운동가로 기억된다. 그런 송몽규 선생에 대한 기억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람이 이준익 감독이었고 그의 삶을 따라가며 그를 완벽히 연기해낸 사람이 배우 박정민이었다.
아무튼 이 영화 속에서 재교토 조선 유학생 회합을 했던 장소, 현 익산문화재단의, 전 익옥수리조합의 3층은 스크린에서 본 그대로 남아있었다.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무 기둥들과 공간을 둘로 나누는 낡은 나무 문. 영화 속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학생들에게 계획을 말하는 송몽규 선생의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문 맞은편의 계단으로 경찰들이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총성이 울리고 촛불을 꺼졌다. 그곳에 모였던 수십 명의 학생들이 어떻게 됐는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보지 않아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영화 속 이야기를 해주자, 함께 이곳을 방문했던 이들은 그런 말을 들으니 이 공간이 더 슬퍼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던 곳이 아님에도 말이다. 나는 그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촛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송몽규 선생이 모았던 그 조선인 유학생들이 그 공간에서 계획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문득 가슴이 벅차오르고 울컥했다. 곧 경찰들이 들이닥칠 것만 같아서. 그러나 주변을 둘러봤을 때 나무 냄새가 가득한 그 공간은 사람 한 명 없이 텅 비어 있었고, 작지만 사방으로 난 창문으로 뜨거운 햇빛이 조금씩 새어 들어올 뿐이었다. 그리고 그 창밖으로는 아파트를 짓겠다고 건물을 모두 무너뜨리고 남은 황무지만이 보여 쓸쓸함을 자아냈다.
익산문화재단은 익산역에서 내려 골목으로 걸어 들어오면 보이는 ‘평화교회’ 맞은편에 있다. 역에서 멀지 않아 걸어서 가기 좋다. 네이버 지도에는 위치가 나타나지 않으니 구글 지도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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