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걷기’와 ‘뛰기’처럼 무작정 해봐야한다. 수영을 배우려면 물속으로 들어가야하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한다. 영어를 하려면 외국인을 만나서 자주 대화를 나눠봐야한다. 외국인 기피증 혹은 외국어 사용 기피증이 있다면 영어회화는 불가능하다. 글쓰기도 그렇다.
나는 글쓰기를 정의하라고 하면 ‘우물’로 비유한다. 하나의 칼럼은 10m깊이의 우물과 같다. 우물속에서 아주 맛있는 한바가지 물을 길어올리기 위해서 도르레를 내려야한다. 깊은 우물에서 길어올린 약수는 사람의 속까지 시원케 한다.
우물은 곧 칼럼 10매이다. 우리가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의 집’을 짓는 것이다. 원고지 10매 정도 되어야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된다. 까페가 될 수도 있고, 작은 쉼터도 될 수 있고, 혹은 공원의 벤취도 될 수 있다. 원고지 10매로 구성된 칼럼은 누구나 그 칼럼의 집에 들어와서 잠시 들렀다가(읽음) 맛있는 커피(감동)을 마실 수 있다.
글이 원고지 10매가 되어야한다고 나는 늘 이야기한다. 그러나, 원고지 10매가 채워졌다고 해서 그것이 칼럼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스타벅스를 즐겨 찾는 이유는 그곳의 커피와 대화공간과 스타벅스가 주는 이미지의 향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칼럼의 감동이다. 감동이 없다면 칼럼은 ‘주인 없는 집’과 같다. 빈집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칼럼을 쓰는 목적은 심심해서 그냥 글을 쓰는 것이 절대 아님을 인지해야한다. 우리가 칼럼을 쓰는 근본 목적은 ‘감동’ 때문이다. 역사일지는 감동을 목적으로 기술하지 않는다. 정부의 보도자료도 감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언론사 취재도 감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취재수첩이나 기획보도는 감동을 목적으로 한다. 감동은 곧 ‘사람을 향한 울림’ ‘사회를 향한 변화’의 목적을 담고 있다. 깊은 우물속으로 우리가 긴 도르레 줄을 묵묵히 내리는 목적은 ‘물’ 때문이다. 내면의 터널과 같은 고독한 우물속으로 기억의 줄이 내려가는 목적은 ‘감동의 물’ 때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기억해야한다.
가령 감동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오늘 저녁을 준비하는 가족의 엄마라고 하자. 어떤 반찬을 준비할지, 어떤 밥을 만들지, 국을 어떤 것으로 차릴지 그 준비하는 정성의 손길은 설레임인데…. 그냥 있는 반찬에 냉장고에서 대충 꺼내서 먹는다면 그날 저녁은 그냥 대충이다. TV나 틀어놓고서 냉장고 반찬에 전기밥솥에서 밥을 퍼서 먹는다면 그런 저녁에는 감동이 없다. 그냥 먹는 것이다. (살기위해서 먹는 그런 생존의 밥이다.)
그러나, 오늘 저녁 나의 가족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할지 벌써부터 설레이는 엄마는 슈퍼에 가서 무엇을 사야할지 이미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래서 그러한 재료를 준비해서 그 요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수많은 재료중에서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고, 그 재료를 가지고 맛있게 요리하듯이 ‘칼럼’도 동일하다. 슈퍼는 곧 현장이고, 재료를 준비하는 것은 현장에서 취재수첩에 내용을 담는 것이고, 요리는 곧 취재수첩과 다양한 정보들을 하나로 취합해서 원고지 10매로 편집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그래서 요리와 같다고 한다.
글쓰기에서 ‘독버섯’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남의 글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는 것이다. 어떤 글들을 참조하되, 그것을 있는 그대로 붙여넣는 것은 글쓰기의 최대 적(敵)이다. 모방은 창조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아무런 생각과 이해도 없이 남의 글을 그대로 붙여넣고 짜깁기하는 것은 글쓰기 실력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글쓰기는 많은 정보를 취합해서 그러한 정보를 이해한 후에, 재료들을 요리하듯이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가공해서 직접 글을 써야한다. 이것이 글쓰기 실력을 연마하는 자신의 비법이다.
나는 확언한다. 누구나 하루에 1가지 사건에서 1가지 감동을 담고서 글을 써본다면 1달도 되지 않아서 금새 글쓰기 실력이 는다. 날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작가로서 빛을 발할 수 있다. 대신, 자신의 경험과 생활을 바탕으로 글을 써야한다. 나무가 ‘땅’속에 뿌리를 내리듯이 작가의 글쓰기는 반드시 생활의 땅에서 시작해야한다. 생활속 사연을 글로 엮는 작가라면 누구나 글쓰기 실력이 나무 자라듯 금새 늘어서 ‘맛있는 열매’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