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교회에게 보낸 편지의 공통점은 시작부분과 끝부분이다. 모든 편지의 시작은 교회 이름과 보낸이다. 끝은 ‘성령’이다. 각 편지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인데, 끝에는 “성령의 말씀”으로 끝난다. 성령의 말씀이 곧 예수님의 말씀과 같다. 편지를 모두 쓰고, 끝에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한다. 결국, 성령과 예수님을 따로 구분해서는 안된다. 성령이 곧 예수님이다. 누군가 자신을 “성령이다”라고 하면, 그것은 성령사칭죄에 해당된다. 성령은 곧 ‘부활의 예수님’이다.
서머나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극명하게 대립된다. 서머나 교회는 아주 가난한 교회다. “네 환란과 궁핍을 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교회를 “실상은 네가 부유한 자니라”고 칭찬한다. 반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대형교회이며, 부유한 교회다. 주님은 일곱 교회중에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가장 크게 책망했다. “토해내겠다”고 심판한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다. 에베소 교회도 칭찬과 책망을 함께 했다. 사데교회도 몇몇 교인이 흰옷을 입고 다녀서 칭찬을 받았다.
라오디게아교회는 100% 책망만 받았다. 이들은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미지근했다. 미지근한 물에는 라면도 못 끓인다. 뜨거워야 라면을 끓이고, 차가워야 얼음이 언다. 미지근하면, 어중간하다. 중용(中庸)은 치우침이 없는 공평함이지, 미지근함이 아니다. 공평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차던지, 뜨겁던지, 양자택일을 해야한다.
주님은 이들에게 불로 연단한 금을 구입하고, 흰 옷을 사고, 안약을 사서 발라 보라고 말씀한다. 불로 연단한 금은 환란속 인내를 뜻하고, 흰 옷은 ‘십자가의 피’로 깨끗해진 행실이다. 안약은 ‘편견과 비판’을 없애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돈과 물질과 권력과 쾌락과 향락이 세상의 불순물이고, 찬양과 복음과 진리와 예배가 생명을 주는 근원임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눈의 고침’이다. 미지근하면, 누구든지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다. 대형교회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교만하면 신앙의 권태에 빠져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심판에 직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