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접고, 가나안 땅에 정착했다고 생각한다. 요단강을 건넌 것은 홍해를 건넌 것과 똑같다.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떠나 광야로 가듯,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 동쪽의 정착생활을 버리고, 서쪽의 광야로 갔다. 요단강을 건넌 것은 루비콘강을 건너듯, 그들에게는 목숨을 건 도전이며, 가나안은 ‘새로운 광야’였다.
갈릴리 호수에서 요단강이 아래로 흘러 사해로 들어간다. 요단강을 기준으로 우편과 좌편이 있다. 이는 거대한 언약궤처럼 양쪽에 펼쳐진 땅이며, 이스라엘 14지파에게 분배됐다. 요단강 우측은 므낫세 반지파, 갓지파, 르우벤 지파가 차지했다. 헤르몬산 동쪽에서 사해 동쪽까지 광활한 영토다. 모세에게 이미 땅을 받은 자들과 받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 요단강 서쪽은 땅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광야의 축복’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쪽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여호수아 13:7)
모세가 분배한 땅은 요단 저편 해뜨는 곳이며, 여호수아가 분배한 것은 요단 이편 서쪽이다. 율법은 동쪽이요, 은혜는 서쪽이다. 요단강을 건넌 것은 서쪽으로 이동이다. 서쪽은 해가 지는 쪽이다. 인생의 광야는 서쪽에 있다. 지성소는 서쪽이다. 십자가도 서쪽이다. 요단 저편 해뜨는 곳에는 두 왕이 있었고, 나머지 31명의 왕은 요단 이편 서쪽에 있었다. 그들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곳, 그곳이 가나안이다. 가나안은 신광야보다 더 척박한 ‘서쪽의 광야’다.
나는 30년 동안 요단 저편 ‘율법의 이단’에 있었다. 율법적 종교는 스스로 성취하고,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의 논리로 경쟁해서 뺏는 곳이다. 동쪽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곳이다. 서쪽은 자신의 해가 사라지고, 은혜의 성령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자신의 능력을 믿는가? 요단 저편 동쪽에 있다. 자신의 무능을 깨달았는가? 요단강을 건너, 요단 이편 서쪽에 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되신다.
주님이 마르다와 마리아 집에 방문했다. 마르다는 분주하고, 마리아는 주님 발치에 앉았다. 부엌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것은 요단 저편 해뜨는 곳이다.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주님의 능력을 구하는 것이 요단 이편 서쪽이다. 서쪽은 해가 진다. 해가 지면, 성령이 임한다. 주님이 마르다를 책망했다. 이후 나사로가 죽었을 때, 주님께 먼저 달려간 사람은 마르다였다. 마르다는 분명 새로운 부활의 신앙인이 되었다. 주님께 먼저 가는 것, 그것이 요단 이편 서쪽이다. 주님은 항상 서쪽에 계신다. 해가 지는 곳, 십자가는 생명의 서쪽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6명의 남편이 있었다. 스스로 노력해서 남편을 얻어 사랑을 누리는 곳, 요단 저편 해뜨는 곳이다. 주님은 “지금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다”고 말씀했다. 남편을 버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 요단 이편 서쪽이다. 그곳에 은혜가 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영생하도록 솟는 샘물을 선물로 받았다.
자신이 이루는 세상적 업적은 모두 요단 저편 해뜨는 곳이다. 마음의 땅은 요단 이편 서쪽에 있다. 마음의 땅에 하나님의 빛이 임하려면, 서쪽으로 가야한다.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해야한다. 마음의 땅에는 31명의 세속적 왕들이 살고 있다. 죄악의 마귀다. 그래서 마음이 스스로 다스려지지 않는다.
31명의 왕은 큰 범주로 3명의 우두머리로 나뉜다. 마태복음 4장에서 주님은 3마리 마귀와 싸웠다. 돈의 마귀, 능력의 마귀, 권력의 마귀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이 ‘마귀의 도구’이다. 성령의 불로 31명의 왕들을 불태워야 한다. 그래야 마음의 땅이 성령으로 점령되고, 주님은 우리에게 배분해 주신다.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려고 하면, 절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 마음은 성령으로 다스릴 수 있다. 악령은 성령이 와야 물러간다.
지난 30년의 신앙생활을 돌이켜 보니, 나는 요단 저편 해뜨는 곳에 있었다. 때가 되니, 내가 의지하던 그 존재가 내 마음에서 죽고, 여호수아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듯, 나는 예수님을 따라 약속의 가나안에 비로소 입성했다. 십자가를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요단 이편 서쪽에 오니, 항상 기쁨이다. 해가 지는 서쪽에 오니, 동쪽보다 더 빛난다. 참으로 신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