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을 중심으로 가나안은 서쪽에 있다. 동쪽을 떠나 서쪽으로 이동한 이스라엘 백성은 목축업에서 농업으로 생업이 전환된다. 게다가 서쪽에는 31개 성과 왕들이 있었다. 유대 광야로 내몰려 마귀의 시험을 받았던 예수님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광야를 마주했다. 그곳은 텅빈 공터의 로또가 아니었다.
중년의 언덕을 살아가니, 나는 동쪽보다 서쪽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해가 뜨는 동쪽으로 가서 해돋이를 봐야겠다면, 나는 서쪽의 황혼을 사랑하겠다. 그곳에 십자가가 있다. 가인은 하나님의 낯을 떠나 동쪽으로 갔다. 롯도 아브라함을 떠나 동쪽으로 가서, 소돔과 고모라로 들어갔다. 동쪽은 세속, 서쪽은 지성소다. 세속적 권력을 내려놓으면 대속의 은혜가 임할 것이다.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쓰면서, 나의 책을 출판하는 낙(樂)으로 인생을 살았다. 과연, 그것이 무슨 유익이랴!! 요즘은 성령께 간구하고,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명언처럼, 좋은 책 1권 내기를 간구한다. 성령께서 주시면, 깊은 글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쓰면, 세속적 차원에 머물고, 성령이 주시면 그 뜻이 매우 깊다. 서쪽은 해가 지는 곳, 적들은 늘어가고, 해결할 방법은 속수무책, 그때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동쪽은 있고, 서쪽은 없다. 없기 때문에, 위에서 내려온다. 그곳이 서쪽이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최후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서 위에서 은혜가 임해서, 무덤에서 살아났다.
나의 서쪽은 주님께서 새로운 배우자를 주실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내가 찾아봤자, 거기서 거기다. 사마리아 여인은 6번이나 배우자를 찾았다. 자신이 직접 찾았다. 요단 저편 해뜨는 쪽에서 삶이다. 요단 이편 서쪽의 삶은 주님께서 주신다. 그러다가 인생이 끝나면, 죽는 것이다. 저녁에는 밥을 배부르게 먹는 것이 아니다. 적당히 먹고, 남은 시간을 정리하다가 잠의 무덤에 묻혀야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더 갖겠다고 탐욕의 입을 벌리면, 상속분쟁으로 가족이 해체된다.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뭐라도 해야만, 빨리 뛰어야, 얻을 것을 더 얻는다고 믿었으나, 나는 서쪽의 삶을 살기로 작정했다. 서쪽은 가나안이다. 요단강을 건너 서쪽의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서쪽의 삶’을 구해야한다. 서쪽에서 서쪽의 삶을 사는 것이 진리다. 서쪽에는 해가 지니, 위에서 해가 내려온다.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염원하는 곳, 그곳이 서쪽이다. 연목구어(緣木求魚)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이다. 서쪽에서 동쪽의 삶을 추구하는 자들이 있다. 세속적인 것들은 동쪽에 있다. 그곳을 떠나야, 지성소가 있는 서쪽에 들어갈 수 있다.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동쪽, 서쪽?
연목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