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에서 천국은 ‘겨자씨’로 비유된다. 겨자씨는 보이지 않는데, 그 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면, 새들이 날아온다. 여기서 새들은 ‘민족들’을 상징하는 랍비들의 숙어다. 열방이 나무에 깃든다. 예수님의 천국복음이 결국 그러했다. 그런데, 예수님 당세에는 겨자씨가 밀알처럼 땅속에 묻혔고, 그 씨앗을 발견한 자들이 극히 미비했다. 갈릴리 어부 출신 제자들과 베다니 제자들, 120명의 제자들과 500명의 제자들이 물론 예수님의 승천을 함께 했지만, 로마 제국에 비하면 예수님의 천국운동은 겨자씨와 같았다. 그 시대가 놀랄만한 어떤 업적도 없었다. 씨가 땅속에 묻히듯, 그 시대앞에 묻혀서 예수운동은 사라지는 듯 했다. 그것이 겨자씨다.
살아보니, 30년 동안 뭔가를 보이려고 했던 모든 것들이 허망하게 결론났다. 반면, 이단속에 속했을 때에도 깊은 어둠의 구석에 밀려서 고뇌와 슬픔으로 노래하며 하나님을 불렀던 모든 사연들은 내 심령에 성령의 열매로 남겨졌다. 천국은 겨자씨처럼 내면에서 시작하며, 남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변화가 내적으로 성숙한다. 고독의 땅속은 견디라!! 1년에 1cm의 변화가 있더라도, 발전의 몸부림을 친다면, 인생은 살아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천국운동은 2천년 동안 진행되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시작은 작았으나 나중은 창대했다. 그와같이 주님을 진실로 믿는 자는 지금은 겨자씨처럼 미약해도 나중은 창대케 될 뿐만 아니라, 본향에 가서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보응할 것이다. 이곳에서 받는 것도 있고 그곳에서 받는 것도 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받을 부활의 소망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