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토론과 토의와 논쟁의 3가지를 구분한다고 해도 그것이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한국사회의 병질은 ‘말’과 ‘글’과 ‘행(行)’이 불일치해도 상관없다는 잘못된 풍토가 정치권에서 문화권, 경제권까지 퍼져있기 때문이다. 메르스보다 심각한 양심불량의 병증이다. 그래도, 독재식 상하 전달 정보시스템은 과거 골동품처럼 한쪽에 방치 혹은 보관될 뿐, 사용되지 않고, 현재는 토의와 토론과 논쟁 및 소셜이 일어나고 있으니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강물이 바다의 방향을 향하듯이.
한자로 3가지 차이점을 살펴보자.
1. 토론(討論)
토(討)는 토벌(討伐)하다에서 알 수 있듯 ‘정벌과 죽임’의 의미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지도자의 규칙과 법률이다. 지도자의 규칙은 엄중하다. 빨간불 파란불이 정해진 시간마다 변화하듯이 정확하다. 하루에 밥을 2번 먹고, 해가 정확히 동쪽에서 뜨듯이 규칙은 변하지 않는다. 법률문구가 국회의원이 고치지 않으면 그대로 유지되듯 그러하다.
토(討)는 말씀 언(言)과 마디 촌(寸)으로 되어있다. 말씀 언(言)은 누가 봐도 사람의 표정이며, 말하고 있는 사람의 인중과 입을 상하로 그려놓은 ‘긴 얼굴’표정이다. 寸은 손목과 팔목을 십자가로 그려놓고서 그 밑에 점은 ‘맥박’을 의미한다. 옛날에 손목은 심장의 뜀을 느끼는 신체부위였다. 寸은 그래서 규칙을 의미한다. 손의 맥박, 손으로 행하는 모든 규칙을 말한다.
론(論)은 말씀 언(言)과 책(冊)이 합쳐졌다. 뭉치 륜(侖)은 책을 합쳐놓은 것으로서, 과거 책은 대나무를 둥글둥글 말아놓았으므로, 둥글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론(論)은 곧 취합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견을 모으는 것을 의미한다.
토론(討論)에서 토(討)는 토론자가 손으로 제스쳐를 취하면서 토론의 정해진 규칙에 맞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고, 론(論)은 상대방 토론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상대방과 나의 의견의 다름을 인정하고서 자신의 의견을 수정보완하거나, 상대방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2. 토의(討議)
토의(討議)는 토론(討論)과 거의 같은데, 의(議)가 다르다. 의(議)는 말씀 언(言)과 의로울 의(義)가 합쳐졌고, 의(義)는 양(羊)과 나(我)의 합성이다. 토론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면서 질문해서 비판하면서 자신의 의견에 수정을 한다면, 토의(討議)는 자신의 의견과 상대의 의견을 서로 교환하면서 좋은 의견을 찾아가는 것이다. 전혀 다른 방식의 생각공유방법이다. 토의(討議)는 친구들끼리 스타벅스에 모여서 ‘무슨 영화볼까?’라고 제안하고서, 의견이 나오면 서로 생각을 물어보고서 결정하는 것과 거의 흡사하다.
의(議)가 의로운(義) 말(言)임을 떠올리면, 토의할 때 자신의 의견이 간혹 희생당하더라도 서로 좋은 의견을 절충해야함을 인지할 수 있다. 그냥 보다 편하게 대화하면서 의견을 묻는 것인데, 이러한 방식은 ‘자아 정체성 확립’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말을 잘하고 표현력이 강한 학생일 경우에는 토의형에서 의견을 편하게 말해도, 말을 잘 못하는 학생은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다. “동감이야”라는 식으로 묻힐 수 있으므로, 토의의 장단점을 파악하고서 학생들의 사고력 개발에 보다 신중해야한다.
3. 논쟁(論爭)
논(論)은 둥글둥글 뭉치면서 대나무로 책을 만들 듯이 서로 다른 의견들을 취합하면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다면, ‘論’이 들어가면, 어떤 하나의 답을 찾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답이 펼쳐짐을 알아야한다. 책속에는 다양한 답들이 명확히 나타나듯 그렇다. 찬반토론이라고 한다면 찬성과 반대의 명확성이 중요하지, 찬성이 옳고 반대가 틀리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찬성도 옳고 반대도 옳돼, 각각의 형상이 어떠한지가 중요한 것이다. 양측의 의견이 팽팽할수록 그러한 토론은 성공한 것이다. 한쪽이 무작정 승리하고, 다른 한쪽이 패배하는 그런 토론은 오른팔이 없는 사람처럼 재미없고 지리한 토론이다. 그런 토론은 할 필요가 없다. 이미 답이 나온 것인데, 왜 토론을 하는가?
쟁(爭)은 손(爪)과 손(又)이 합쳐지고, 거기에 지팡이(ㅣ)가 세워져 있다. 손이 2개이고, 지팡이는 하나이다. 여기서 지팡이는 ‘지도권’을 의미한다. 쟁(爭)은 주도권 다툼을 의미한다. 여당은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고, 야당은 그 권력을 뺏으려고 한다. 서로 다른 2개의 손이 주도권을 놓고 싸움하는 것이다. 세상속 정치, 권력, 문화, 경제, 학교 등등 모든 분야는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다. 주주총회에서도 주도권 다툼은 비일비재하다. 쟁(爭)은 손톱을 할퀴듯 그렇게 싸움질하는 것을 말한다. 상대를 향한 맹렬한 비난도 여기에는 포함된다. 논쟁(論爭)은 상대방을 무작정 공격하는 것으로 변질될 수도 있음을 이해할 것이다.
토론과 논쟁의 차이점을 명확히 꼽으라면, 토론은 토론자의 발표에 방점이 있고, 논쟁은 ‘질문’에 방점이 있다. 논쟁은 질문이 화살처럼 날카롭다면, 토론은 토론자가 자신을 표현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인다. 상대방을 향한 질문은 부수적인 것이다.
이러한 3가지 해석은 단지 한자해석일 뿐, 토론교실이 실제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토론진행자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토론진행자는 마치 ‘공기’와 같다. 공기가 없으면 숨이 막히듯이 토론진행자가 진행을 잘못하면 학생들은 말문이 막히고 숨이 턱턱 차오른다. 공기부족이다. 토론진행자가 얼마나 원활하게 진행하느냐가 관건이다. 공기가 원활하고, 거기에다 물까지 제공된다면 그 토론회는 표현력도 늘고, 아이들끼리 생각공유가 일어나면서 보다 활력이 넘치는 교실이 될 수 있다.
4. 토론과 토의와 논쟁의 공통점
3가지 공통점은 집단성이다. 모여서 함께 뭔가를 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혼자 있으면 잘하면 ‘잠자기’ 혹은 ‘게임’ 혹은 ‘TV시청’ ‘명상’ ‘꽃과 대화’ 등등이다. 친구가 1명만 있어도 어린왕자와 사막의 여우처럼 생각공유의 소통이 발생하면서 삶에 활력소가 발생한다.
3가지 공통점의 또 다른 하나는 ‘言’이다. 토론과 토의와 논쟁은 ‘書’가 아니라 ‘言’이다. 입으로 말하는 훈련이 반드시 선행되어야한다. 말로 단어들을 뱉는 연습은 초등학생이 연필을 붙잡고서 글씨를 정자체로 쓰는 것처럼 매우 매우 중요하다. 정자체 글씨를 쓴다는 것은 입으로 단어를 명확히 발음하는 것과 동일하다. 단어 말하기는 밥먹기와 비슷하다. 밥먹을 때 입안에서 밥알을 씹어, 목구멍에 넘기듯이 이제는 단어들을 생각으로 씹어서, 생각의 단어를 입속에 두지 않고 입밖으로 툭툭 던지는 연습을 해야한다. 밥은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이고, 단어는 입밖으로 던지는 것이다. 이것이 토론과 토의와 논쟁의 가장 기본이고,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다.
* 해당 칼럼은 토론의 전문용어와 의미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