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장 열처녀 비유는 매우 충격적이다. 그때는 종말이며, 현세적 종말일 것이다. 이 비유와 관련해 중동인의 눈으로 본 예수에서 “도무지 모른다”를 중동지역 언어관습으로 해석했다. 강한 거절이 아니고, 잠정적 유보라는 것이다. 혼인잔치에 들어가지는 못했으나, 다시 문이 열릴지, 아닐지, 신랑의 의지에 달렸다. 문을 열고 닫는 것은 신랑의 자유의지이고, 등불에 기름을 가득 담아서 불을 밝히는 것은 신부의 의지다. 누구를 위하여 등불을 들었는가?
다섯 처녀는 등불과 기름을 함께 가졌고, 다섯 처녀는 등불만 가졌다. 당장에는 등불이 꺼지지 않지만, 불이 서서히 꺼진다. 어느날 신랑이 왔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랑이 오는 그 때는 종말의 때이며, 날마다 신랑은 온다. 날마다 오는 신랑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전해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덤으로 갔다. 주님은 이 시대에도 모든 성도들을 각각 방문해서 그 삶을 살펴보신다. 그때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가?
미련한 다섯은 기름을 빌려달라고 했다. 빌린 기름으로 등불을 밝힐 수 없다. 십자가의 피흘림을 믿는 것은 성령이 역사해야 가능하다. 다섯 처녀는 서로 연합해서 큰 등불을 가진 것이 아니다. 각각 등불을 가졌다. 성령은 성도와 주님의 연합이다. 예수님이 성도의 마음에 임할 때, 그 착륙이 성령이다. 성령을 받아야 신랑을 맞이한다. 십자가의 피흘림으로 혼인서약이 맺어졌고, 성령을 받아야 영원한 혼인잔치에 참여한다. 성령이 이 땅에 온 때부터 재림까지 혼인잔치 기간이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혼인서약을 맺고, 아직 결혼식이 열리지 않은 것과 같다. 성령을 받아야, 신랑인 예수님을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