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는 AD50년에 사도 바울이 기록했다. 수신자는 초대교회 4곳이며, 보낸 곳은 안디옥 교회다. 예루살렘 교회 사도회의에서 “이방인들의 구원”을 결정하고, 결정문을 가지고 사도바울이 편지를 쓴 것이다. 신약성경의 최초 기록문서는 갈라디아서이다. 그의 첫 편지는 첫사랑을 향한 연애편지처럼, 직설화법이며, 과감하며, 열정적이다. “다른복음”이란 말도 여기서 나온다. “율법에 의한 복음”이 다른 복음이다. 그 시대에 바울이 전한 복음 “은혜의 복음”이었고, 기존의 복음은 “율법의 복음”이다. 십자가의 대속에서 벗어난 복음은 사실상 ‘다른 복음’이다. 성전건물을 건축하고, 아버지의 목회권을 자식에게 계승하고, 정치권력과 야합하는 기독교는 ‘다른복음’으로 변질된 대표적인 사례다.
십자가 교회는 “예수님의 피흘림이 목회자와 성도들의 심장에 강물처럼 흐르는 교회”이다. 사도 바울이 세운 초대교회가 그러했다. 비시디아 안디옥 교회, 이고니온 교회, 루스드라 교회, 더베 교회다. 이들은 서로 50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교회간 신앙교류가 있었다. 바울은 6개월 정도 개척교회를 만들고, 그 교회를 신앙공동체들에게 그대로 물려준 다음에 새로운 교회를 개척했다. 그렇게 4곳을 개척한 다음에 안디옥 교회로 돌아왔다. 안디옥 교회에서 순회사를 파견해서 순회설교만 할 뿐, 교회 공동체는 스스로 운영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바울이 행한 가장 위대한 성령의 능력이다.
예수님과 바울의 공통점이 여기에 있다. 예수님도 갈릴리 공동체, 예루살렘 공동체, 사마리아 공동체, 가다라 공동체를 각각 독립적으로 두고, 신앙공동체가 운영될 수 있도록 순회를 하면서 그 지역을 돌아봤다. 이러한 공동체는 천주교 스타일이 아니다. 천주교는 초대교회의 정신이 많이 훼손되었다. 초대교회는 왕권 체제와 대항해서 시민들의 신앙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1인 독재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그리스도를 중심한 상호연합 공동체였다. 그런데,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그때 교황권력이 황제의 권력위에 서서히 군림하면서, 권력이 교회내부에 침투한 것이다. 초대교회 정신은 권력의 군림을 거부했다. 바울이 권력을 원했다면 초대교회 4곳을 개척하고, 4곳의 공동 목회자로서 살았을 것이다.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갈라디아서를 보면, 사도 바울이 초대교회에 실권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이 초대교회 4곳에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편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초대교회는 신앙공동체로서 율법적 기독교인들이 전한 율법적 복음을 들을 수 있고, 그러한 율법적 복음을 듣게 되면 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은 ‘거짓 복음’으로 매도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기록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공동체다.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상호연합하면서, 초대교회 4곳이 상호연락을 취하면서 진리를 탐구하고, 성령의 방향을 서로 조율하면서, 로마제국의 살벌함 속에서도 서로 의존하면서 교회의 전통을 계승하기 시작했다. 과연, 한국교회에도 이러한 성경적 신앙공동체 정신이 있는가?
초대교회 4곳은 목회자가 없었다. 그런데도 신앙공동체가 유지된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들에게는 신약성경도 없었다. 단지, 구약성경만 있었다. 사도 바울은 구약성경 중에서 핵심되는 성경은 그들에게 물려줬을 것이다.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성도가 있다면, 그것을 읽으면서 신앙공동체의 예배를 유지했을 것이며, 주기도문과 중요한 성경본문을 상속했을 것이다. 공동체로서 성도들이 행해야할 기본적인 수칙도 자신들이 자율적으로 정해서 하도록 했을 것이다. 제도는 형식이며, 십자가의 피흘림을 통한 은혜의 복음이 중심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절대적임을 그들에게 공표했고, 성도들이 그것을 잊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하고 하나되는 것이 ‘교회’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종이 되는 것이 ‘사랑’이며, 누군가를 다스리고 군림하려는 생각이 짐승의 권력이고, 우상인 것을 알려줬다. 지금 이 시대도 동일하다. 목회자도 구원받을 성도이다. 이단교주도 십자가의 피흘림으로 죄사함을 받아야한다. 바울도 베드로도 십자가를 외쳤다. 하물며 이 시대랴!! 십자가와 십자가의 정신을 훼손하는 목회자는 믿지 말아야한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임재한다.
참고도서 : 유기적 성경공부 (진에드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