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량(贖良)에서 속(贖)은 값을 치른 것이다. 속량을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다. 로마서 3:24에서 바울은 ‘속량과 화목제물’의 비유로서 주님의 대속사건을 증거한다. 바울처럼 확실히 ‘주님의 구원사건’을 증명한 사도가 있었을까? 그는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속량의 본질을 더욱 명확히 알았을 것이다. 이중국적을 가지면, 상황에 따라 면책특권이 발효된다. 국회의원에게 면책특권이 있듯 그렇다.
바울은 사도행전에 보면, “로마 시민권자”라고 주장했다. 로마시민권자는 로마법에 따라 판결을 받고, 다양한 권리를 누렸다. 한국에서 미국시민권자는 특별한 대우를 받듯이 그렇다. 대사관은 이 땅에 있지만, 외국의 영토로 간주한다. ‘간주’는 실제로 법적 효력이 미친다. 미국대사관은 한국땅에 있지만, 미국법이 다스린다. 그래서, 미국영토다. 지난번 ‘대사관’ 담을 넘은 대학생은 미국의 국경을 넘은 것과 같다. 대사관은 매우 특별한 상징성을 갖는다.
일본 식민지 치하에서 대한민국이 독립했다. 그렇다면, 한국에 있든, 외국에 있든, 모든 대한민국 백성은 해방된다. 이것이 ‘대한민국 해방’이다. 속량을 통한 화목제물은 이러한 개념이다. 대한민국이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었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죄로부터 해방됐다. 그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건과 부활’이다. 죄값을 치르고, 3일동안 무덤에 있다가, 부활하신 주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린다. 주님을 믿으면, 모두 주님께 속한다. 즉, 주님의 통치를 받으면 죄가 접근할 수 없다.
일본이 항복하고, 대한민국이 독립하자, 미국 군대가 한국에 들어왔고, 일본군대는 철수했다. 그와 같다. 주님을 믿으면, 죄를 틈타고 들어온 마귀가 물러간다. 물러가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그것이 천법이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로움을 믿으면, 주님의 의가 작동할 수 없다. 마귀는 사람의 행위가 악함을 틈타고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피난처를 삼는 것이다. 주님을 믿으면, 천국 대사관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천국백성이면, 죄는 소멸된다.
“죄가 소멸된다”는 개념은 2가지다. 하나는 과거에 지었던 모든 죄가 없어진다. 자동이다. 과거의 죄는 주님께 갈 수 없다. 왜냐면, 주님은 의(義)의 빛이다. 주님은 빛 자체이니, 어둠의 죄는 주님께 근접할 수 없다. 그래서 주님께 가면, 자연스럽게 죄가 떨어진다. 죄는 우리에게 달라붙었으나, 주님은 그 모든 죄를 소멸하신다. 이것이 이신칭의(以信稱義)다. 우리에게 죄가 있으니, 그 죄를 없애주신 주님이다.
그런데, 과거의 죄가 용서받았는데, 여전히 죄를 짓는 습관을 갖고 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고질적 습관병’이며, 마음속에 탐욕이 살아있어서 그렇다.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고염나무의 뿌리에서 본성이 올라오는데, 성령께서 그것을 잘라주신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지 말고, 성령을 부르면서 자신의 약함을 토로해야한다. 약함을 주님께 인정하면, 성령께서 그 마음에 은혜를 주시고, 탐욕의 마음이 줄어든다. 이것이 ‘죄의 소멸’이다. ‘죄의 소멸’은 ‘과거의 죄가 청산되는 것’이고, ‘미래의 잠정적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이다.
“주님을 믿음으로 어떤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이런 생각을 했던 이단이 ‘니골라당’이다. 계시록에서 가장 심각한 거짓 선지자로 분류된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위해서 더 죄를 짓자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우매한가?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만, 그럴수록 성령을 부르면서 그 마음을 다스려야한다. 계속 죄를 짓다가, 마음이 주님께 멀어지면 어떻게 하나? 구원은 주님께 있을 때 일어난다. 주님과 멀어지면, 십자가의 은혜가 사라지면, 죄는 다시 침략한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구원의 가치를 진정 믿고 깨닫는다면, 그 구원은 영원하다. 모든 죄를 용서받은 구원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