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한국자유총연맹 송년회 취재가 있어서, 늦은 오후까지 사진을 찍다가, 나를 부르는 미세한 성령의 음성을 따라, 맛스런 호텔 뷔페를 물리치고, 수요예배를 향했다. “사람이 뷔페로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다” 군침을 삼키며, 훈제연어의 주홍빛 유혹을 뿌리치며, 교회로 가는 길은 기쁘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마을 버스에서 내렸더니, 정각에 도착했다. 그 긴 거리를 이렇게 도착하는 것도 은혜다.
“각 사람입니다. 각설탕 아니고, 각사람입니다. 알겠죠?”
수요예배는 로마서 강해였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 2년간 머물렀다. 두란노 학당에서 날마다 강론했다. 그때 사람들이 얼마나 왔을까? “날마다” 했으니, 얼마나 왔을까? 그 강론을 들었던 사람들은 엄청난 복을 받은 것인데, 아마도 10명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강론하는 시간대가 모두 일하는 오후 시간대였다. 폐교가 되버린 ‘두란노 학교’를 저렴하게 임대해서 성경학교를 열었던 바울은 그곳에서 제자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그 바탕위에서 위대한 로마서와 8명의 제자가 탄생했다. “날마다” 강의를 했으니, 성경을 강론하면서 모든 말씀이 재조립되고, 그 빛이 확실해졌을 것이다. 나는 어제 사도바울을 만났다. 로마서를 통해 내게 다가온 사도바울의 외침은 “각설탕 아니고 각사람”할 때, 내 눈이 번쩍 트였다.
“아멘!! 각설탕 말고 각사람!!”
각설탕에서 ‘각’은 뿔 각(角)이다. 각설탕(角雪糖)은 뿔처럼 생기고, 눈같은 당분이다. 각사람에서 ‘각’은 각각 각(各)이다. 各은 다리와 신발이다. 누구나 신발은 각각 신는다. 평생, 나는 로마서를 수십번, 읽었는데, 로마서 2장은 최근에 2번이나 읽었는데, “각”은 안 보였다. 어제, 성경강해 설교에서 “각”에 방점을 두고, 목사님이 “봉침”을 놓듯이, 그곳을 ‘땅땅땅’ 때리니, 말씀이 흘러나왔다. 오!! 말씀의 반석이여!! ‘각사람’의 인봉은 평생 잊혀지지 않으리라.
이 시대 로마서는 죽었다. 고린도 교회에 머물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락과 부패의 도시에 머물면서, 짙은 어둠속에서 가장 빛나는 성경이 탄생한 것이다. 그 로마서가 ‘바울의 원음’으로 드러나기까지, 로마서는 죽은 것이다. 로마서여!! 달리타쿰!! 이사야서와 연결해서 로마서를 강해하는 그 입체적 조명속에 울려퍼지는 ‘바울의 원음’은 참으로 신비했다.
그래서, 나는 로마서 2장에 있는 “각사람” “셋”에 형광펜을 칠했다.
6절의 각사람,
9절의 각사람,
10절의 각사람,
그리고 나도 각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