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에는 성경적 ‘의와 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요한복음에서 진리의 영이 오면, 의와 죄에 대해 정확히 드러낸다고 하셨다. 성경의 원음이 선포되면, 죄와 의가 확실히 드러난다. 왜 그럴까? 성경원음이 선포되면서, 죄와 의를 구분하는 ‘기준’이 다시 설정된다. 성경원음이 가려지면, 세상적 기준에 의해, 인생은 ‘삼천포’로 빠진다. 하늘을 올려보면 북극성이 있다. 그 북극성은 모든 방향의 기준점이다. 변하지 않는 유일한 기준점을 따라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한다. 동방박사도 ‘별’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왔다. 주님은 새벽별이다.
[요12:45]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영광”에는 두 종류가 있다. 사람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이다. 북한에서 최고위급 영광을 누리던 자가 탈북했다고 하자. 남한에서 귀순용사의 영광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귀순용사의 영광을 받으면서, 동시에 “배신자의 치욕”이 따른다. 북한은 그 탈북자를 “매도”할 것이다. “영광”과 “치욕”은 절대명사가 아니고, 추상명사이며,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기준, 어떤 관점으로 판단하느냐?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의 영광은 ‘사람의 관점에서 영광’이며,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영광’이다. 복음서와 로마서를 읽을 때, “영광”이 어떤 종류의 영광인지 구분하면서 읽어야한다. 맥락을 살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사람의 영광은 돈과 권력과 명예와 향락과 부유함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죄를 용서받은 의인”이다.
“죄”와 “무죄”도 동일하다. 로마서에 나오는 “의”는 “죄”를 전제하는 단어여서, “무죄”로 치환해도 의미가 통한다. 죄는 분명히 법정용어다. 그 법정은 “하늘법정”이며, 천국의 대법원장은 “하나님”이다. 세상판결은 세상적 구속과 영향이 있을 뿐이다. 과연, 하늘법정에서 최후의 심판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것이 핵심이다. 놀랍게도, 주님은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최후법정의 선고(宣告)가 이미 이뤄졌기 때문이다. 물론, 각 사람마다 죽음 이후에 확인할 것인데, 주 예수의 십자가 피흘림을 통해 죄인도 “무죄”로 판결된다.
혹자는 “이것은 불의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죄지은 자는 처벌받고, 의로운 자는 축복을 받아야한다”라고 말을 한다. 그렇다면, “죄”와 “의”가 무엇인가? 대부분 자기 기준에 의해서 “죄와 의”를 말할 뿐이다. 죄와 의를 말하는 자마다 하나님께 정죄함을 받는다. 왜냐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불의하고, 누구를 정죄할 기준을 갖지 못한다.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다.
(한국은 북한을, 북한은 미국을, 일본은 한국을, 중국은 미국을, 이스라엘은 회교를, 기독교는 불교를, 이단은 정통을 모두 “원수”처럼 여긴다. 그렇다면, 지구에 남을 인간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홀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통치한다. 하나님의 기준이 곧 ‘십자가’다.)
가령, 예수님은 중죄를 범한 사형수로 돌아가셨다. “부활하셨다”는 의학적, 사회적, 행정적 판결을 받은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의인”으로 믿는다. 율법적 판단은 그들의 기준일 뿐이다. 각종 도덕률, 각종 인본의 기준, 선행과 봉사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적 가치들이 ‘하나님의 의’를 훼방할 수 있으니, 십자가의 정신으로 세상과 결별하는 연습을 자주 해야한다.
아브라함이 ‘의로움’을 입은 것은 할례를 받기 전이다. 할례를 받기 전에 “의”를 얻었으니, 이방인의 조상으로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다. 물론, 택함을 받은 아브라함이 지역사회를 위해 착한 행실과 대접을 많이 했다. 그러나, 그러한 행실로 아브라함이 “의”를 받은 것이 아니다. 그러한 행위가 “의”의 조건이 되었다면, 더 나은 자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사라의 권유를 받고 하갈과 동침해서 이스마엘을 낳고, 나중에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셨다. 아브라함과 그 가정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축복을 철회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언약하시고, 준행하신다. 십자가로서 인침을 받은 언약백성의 구원도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신다. 이것이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