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장에서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했다. 악한 정권이든, 선한 정권이든 하나님이 임명하셨다. 북한정권도 동일하다. 로마제국이 그러하니, 시진핑 정권도 동일하다. 복종하라!! 여기서 “복종”은 어떤 개념일까? 나는 헬라어를 알지 못하니, 문맥의 추론을 하면, 놀라운 진리가 발견된다. 언젠가, 설교에서 들었던 ‘두 개의 도성’이 여기서 나타난다.
집의 주인은 집일까? 주인일까? 집은 집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집이 왜 집을 소유하지 못할까? 무생물이라서 그렇다. 무생물의 소유권은 사람에게 속한다. 그래서 집주인이 집을 소유한다. 몸은 몸을 소유하지 못한다. 몸의 주인은 ‘마음’(영혼)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2가지 속성으로 만들었다. 하나는 흙, 다른 하나는 영혼이다. 내가 최근에 산 옷중에 “양면 옷”이 있다. 사회활동할 때는 검정색이 밖으로 나오도록, 교회에 갈 때는 하얀색이 밖으로 드러나게 입는다. 하나의 옷인데, 양면옷이다. 그처럼, 사람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속얼굴이 영혼이고, 겉얼굴이 육신이다. 바울은 “속사람”과 “겉사람”으로 구분했다.
겉사람은 말씀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겉사람은 빵을 좋아한다. 말씀을 소화하는 것은 속사람이지, 겉사람이 아니다. 내가 말씀을 듣는다면, 여기서 “나”는 속사람이다. 겉사람은 말씀과 아무 상관이 없다. 공기는 기도(氣道)를 통해, 음식은 식도(食道)를 통해 들어가듯이, 속사람과 겉사람은 함께 있지만, 전혀 별개다.
“이 빵은 내 몸이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에게 부서진 빵을 나눠줬다. 그 빵을 먹을 때, 물질의 “빵”은 식도를 통해 소화된다. “이 빵은 내 몸이다”는 그 문장은 영혼이 새겨진다. 언어는 영혼이 먹고, 물질은 몸이 먹는다. 그런데, 주님의 몸이 짓뭉개지면서, 십자가에서 피흘림을 당했을 때, 그 광경을 본 제자들은 “부서진 빵”을 떠올렸고, 십자가의 피흘림에서 “포도주”를 떠올렸다. 포도주가 물질이지만, 그 물질이 ‘언어’로서 상징이 되면, 영혼이 섭취한다.
권력들에 복종하라는 것은 육신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육신은 제도권에 속했으니, 그것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어떤 사람은 “맥콜”을 절대 마시지 않았다. 맥콜을 마시면, 그것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맥콜”의 물질은 죄가 아닌데, “맥콜이 우상의 제물이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의 인식이 그러하니, 그는 마시지 않는 것이다. 물질은 물질일 뿐이다. 그 물질에 대한 사람의 인식이 위험하거나, 안전하다.
이것이 좋다, 저것이 나쁘다,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가 없다. 자본주의가 분명 살기에 편하지만, “육신”에게 유익한 제도가 과연 “영혼”에도 좋을까? 나는 “이혼했을 때” 2년 정도 내 신앙은 빛났다. 내가 믿었던 30년의 종교단체에서 버려짐을 당했을 때, ‘구원의 박탈’이 내 심령을 점령했을 때, 나는 결사투쟁하는 간절함으로 신앙에 불이 붙었다.
또한, 나는 동대문 경찰서 유치장에 10시간동안 갇혔던 적이 있는데, 그때 세례요한의 심정을 가장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곳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감옥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나는 유치장에 갇힌 이후로 “감옥”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또는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을 ‘고난’으로서 존중한다.
권력의 넘침, 재물의 넘침, 그 속에서 사람의 영혼은 수면위로 떠올라야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육신이 부유해도 영혼은 “구원”이 확실하다. 뿐만아니라, 구원받은영혼이 육신의 부유함으로 “구원사역”에 힘써 행할 것이니, 영혼의 구원은 더욱 빛날 것이다.
나는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다. 마음을 낮은 곳에 두니, 쓸만큼 풍요롭고, 영화보다 드라마를 좋아해서, 안방극장은 날마다 영화관이더라. 여유로움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100원짜리 동전을 세면서 커피값을 계산했던” 과거를 떠올린다. 월세를 내지 못해서 쩔쩔 맸던 때를 기억하면서, 돈의 가치를 마음에 새긴다. 돈에 매몰당하지 않는 나의 방법이다.
** 로마서 12장은 교회법에 대해, 13장은 세상법에 대해서 바울은 말하고 있다. 육신은 세상에 속해서 살아야하니, 세상법을 지켜야한다. 영혼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니, 교회법을 따라야한다. 결혼을 한다면, 부부로서 가족법을 따라야한다. 결혼하지 않으면 부부의 결혼법에서 자유하다. 육신이 죽으면, 그 육신은 세상법에서 자유하다.
** 참고도서 : 루터의 로마서 주석(CH북스, 박문재 옮김) p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