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1:18~27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태복음 1장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족보장(1~17)과 예수님 탄생(18~25)이다. 탄생설화는 요셉과 마리아 부부의 사생활이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유대민족의 결혼풍습은 약혼의 구속력이 매우 강했고, 1년의 정혼기간을 걸친 다음에 결혼식을 올렸다. (야곱은 7년의 연애기간을 걸쳐서, 결혼했다.) 약혼기간에 마리아의 임신소식이 들렸다. 요셉은 분명히 알았다.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닌 것”을. 누구의 아이일까?
마태는 왜 이 사건을 구체적으로 적었을까?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탄생설화”가 생략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만 ‘성령잉태설’을 공개했다. 사람들이 듣기에 불편한 진실을 왜 드러내서 말했을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들이 듣기에 불편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어야 한다. 이단교주들은 자신들의 불편한 과거를 숨겨서, 거짓으로 포장하고, 과장하며, 조작한다. 예수님은 있는 사실 그대로 세상에 나타나셨다. 예수님의 생물학적 친아버지는 “요셉”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친 아버지다. 그것을 믿는 자마다, 예수님의 성령이 마음에 임할 것이다. 아멘!!
[눅1:35]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과학적 검증이 있어야만 믿을 수 있는가?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 ‘지식의 이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마음에 받아드리는 것이다. 마태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했다. 그 말씀은 먼저 요셉에게 들려졌다.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요셉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다.
‘인본의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드려야한다. 천사의 말을 들었던 요셉은 그 말씀을 인정했다. 요셉이 믿은 그 말씀에 대해 우리가 의심(疑心)하는 것은 그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다. 마리아도 믿었고, 요셉도 믿었는데, 그 진리를 왜 믿지 않는가? 혹여,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믿지 않아도, 그 말씀은 진실하다. 우리의 믿음으로 성경말씀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 검증은 무의미하다. 각종 유언비어와 저속한 상상은 ‘거룩한 성령잉태’를 훼손한다. 성령잉태를 믿어야, 성도의 심령에 성령이 임한다. 성령이 임하면, 성령잉태가 믿어진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령잉태를 믿지 않는데, 어찌 성령께서 임하겠는가!!
[민21:8~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모세가 불뱀을 장대에 메달았고, 그것을 보는 자는 모두 살았다. 여기에 무슨 과학적 검증이 필요한가? 뱀독의 해독과정이 불뱀을 보는 것과 어떤 상관관계로 작용했는지를 연구하는 의료지식이 있어야하는가? 이것은 영적인 능력에 관함이다. 예수님은 불뱀 사건을 십자가로 비유했다. 십자가에 메달린 주님을 보는 자마다 그 영혼이 구원을 얻는다.
[요3:15~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령잉태설은 ‘가설’이 절대 아니다. 성령잉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그 말씀을 믿는 자마다 마음속에 성령이 임재할 것이다. 영적인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운행된다. 세상적 잡다한 지식은 ‘흑암과 혼돈’에 속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지식 위로 운행한다. 우주법칙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력’이 있다. 말씀으로 만물이 창조되었으니, 성령은 세상만물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세상만물을 지배한다. 마리아에게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잉태됐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을 의심하는 자는 결국 십자가도 배신한다. “성령잉태”는 진리다.